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의 정유라 지원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승마지원에 직접, 그리고 깊숙히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최순실 씨의 딸 정 씨에게 삼성이 승마 훈련 비용을 지원했다는 첫 실명 보도가 나온 날은 지난해 9월 23일이다. 그 다음날인 9월 24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은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VIP. 3. 삼성: 명마 관리비 임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해석은 이렇다.
"대통령이 정 씨가 삼성으로부터 독일 승마 훈련 비용을 지원받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삼성이 정 씨에게 구입해준 말을 마치 정 씨에게 임대한 것처럼 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안 전 수석에게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박상진·황성수, 독일에서 비밀 회동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뇌물 사건 2차 공판에서 공개된 내용이다.
실제로 수첩 기록이 있은 뒤, 최순실 씨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이 독일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 특검팀에 따르면, 최 씨와 박 전 사장, 황 전 전무 등은 명마 '스타샤'와 '라우징1233'을 정 씨의 승마 코치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의 명의로 뒀다가 2018년에 소유권을 최 씨에게 다시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검팀은 "삼성은 말을 매각한 것처럼 처리하기 위해 월 9만 유로를 안드레아스에게 주고, 안드레아스는 독일의 삼성 계좌로 입금하기로 했다"며 "승마 지원이 노출되지 않게 우회 방식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수첩 기록 날짜보다 이전인) 지난해 8월 이후에는 삼성이 정 씨를 지원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검팀의 주장은 박 전 대통령 및 삼성이 품었던 계획에 대한 추측일 뿐이라는 게 이 부회장 측 입장이다.
그러나 적어도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요구로 삼성이 정 씨를 지원했고, 자신이 지원 방식 변경 등을 요구하면 삼성이 받아들이리라고 믿었던 정황은 도드라졌다.
이는 최순실 씨의 존재 자체를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도 된다. 정 씨 지원에 대해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으므로, 박 전 대통령이 정 씨 지원 방식 변경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리라는 게다.
최순실, 사위 용돈 주려고 말 관리사 등록
이밖에도 이날 공판에선 삼성의 정유라 씨에 대한 지원 방식에 대한 다양한 진술 기록이 공개됐다. 황성수 전 전무의 진술 기록에 따르면, 삼성은 비덱스포츠와 6명의 승마 선수를 지원하는 용역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정 씨만 혼자만을 지원하려 했었다.
비덱스포츠는 최순실 씨가 독일에서 설립한 회사다. 정 씨는 지난 1월 덴마크에서 체포된 뒤 "난 삼성이 지원하기로 한 6명 중 한 명이었을 뿐"이라고 밝혔었다. 정 씨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고 말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삼성의 원래 계획은 정 씨 한 명만 지원하는 거였다. 요컨대 정 씨의 발언은 황성수 전 삼성 전무의 진술과 배치된다.
또 정유라 씨와 사실혼 배우자인 신주평 씨 관련 진술도 공개됐다. 노승일 전 코어스포츠 부장(K스포츠재단 부장)의 검찰 조서 내용이다. 노 전 부장은 "(최순실 씨의 사위 격인) 신 씨는 정유라 씨가 키우는 개 11마리, 고양이 3마리를 관리했을 뿐"이라고 했다. 신 씨는 말을 관리하는 방법도 모르고, 관련 경험도 없는데 최 씨가 신 씨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신 씨를 말 관리사로 등록했다는 진술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