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은 2012년 7월까지 유예하고, 교섭창구 단일화하는 시행령을 만들며 교섭단위는 사업 또는 사업장별로 하고, 전임자 임금은 2010년 7월부터 시행하며 사업장 규모별로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위 3자의 합의 내용입니다.
복수노조 허용 유예는 노동3권 전면 부정
복수노조허용, 13년 동안이나 유예되어 온 것을 2년 6개월 더 유예한다고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보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논의과정과 합의내용을 보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첫째, 3자 합의에서, 교섭창구단일화를 시행령으로 규정하겠다고 명시한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단체교섭권은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3권 중의 하나로, 노동조합이면 당연히 가지는 권리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은 헌법 37조 2항에 따라 오직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고,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한 경우에만 제한 가능하고, 이 때도 본질적인 부분은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만드는 법률이 아니라 정부가 마음대로 만드는 시행령으로 단체교섭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니, 이것부터 헌법에 위반되는 합의입니다. 더구나 사용자의 교섭비용 증가를 막는다는 목적에서 창구단일화를 한다니 더 기막힙니다. 교섭비용 절약이 국가안전보장에 해당하나요? 아니면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소수노조에는 아예 단체교섭권 행사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니,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둘째, 교섭단위를 사업 또는 사업장별로 한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이미 산별노조로 바뀌고 있어서, 산별교섭을 우선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보건의료노조와 여러 병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교섭하는 것이죠. 미국산 수입 쇠고기는 병원 식단에 넣지 않는다는 등 공통의 사항에 대해 각 병원들이 함께 합의하면, 개별 병원이 식비 더 든다고 뒷걸음질할 이유가 줄어들게 되지요. 백화점 연장영업 하지 말자고 서비스 노동자들이 요구해도, 여러 백화점들이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 산별교섭을 하면 여러 백화점들의 약속을 함께 받아낼 수 있겠지요. 이렇게 공통의 문제는 산별교섭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교섭단위를 사업 또는 사업장별로 하라고 시행령으로 정하면, 사용자들은 산별교섭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산별교섭의 가능성을 없애버리게 되므로, 이 합의 역시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는 위헌적인 내용입니다.
셋째, 삼성과 같이 유령노조 때문에 노조를 만들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회사의 요구에 따라 복수노조 설립 허용시기를 2년 6개월이나 미룬 것 자체가 큰 문제입니다. 2012년 6월,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때 과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삼성의 집요한 요구를 물리치고 복수노조를 허용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시간을 얻은 삼성과 재계는 복수노조 허용에 대비해 철저하게 노동자들을 단속해나갈 것입니다.
전임자 임금 문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타임 오프제도, 회사의 노무관리에 필요한 시간만 노동조합에 인정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회사가 인정하는 시간만 노조활동을 할 수 있고, 노동조합의 교육도,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노조활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을 노무관리 대행부서 쯤으로 여기는 것 아닙니까.
▲ 경총회장, 한국노총위원장, 노동부 장관끼리만 손을 맞잡았다ⓒ연합뉴스 |
전임자 임금 지급이 형사처벌 대상인가
내년부터 시행되는 노동조합법에는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주는 것이 금지되고, 임금을 지급하는 사용자를 형사처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노동조합의 자주적 활동을 저해하는 부당노동행위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용자가 허용하는 만큼만 활동하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부당노동행위 아닙니까.
노동조합법 개정의 쟁점은,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 임금을 주는 것이 노조에 대한 부당한 지배개입이냐 아니냐입니다. 노조 전임자 임금을 사용자가 부담한 것은 노조활동을 위해 노조가 얻어낸 것이지, 사용자가 노조를 회유하기 위해 또는 노조 집행부와 노조원들을 이간질하기 위해 준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복잡한 셈법을 구사하는 사용자는 없었습니다.
부당노동행위로 사용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시행되면, 노조의 역할을 인정하고 공존하기 위해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사용자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법률이 될 것입니다. 만일 임금을 지급한 사용자가 기소되어 처벌받게 될 때, 헌법소원을 제기하면 당연히 위헌으로 판결날 조항입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전임자 임금 주느라고 기업활동에 부담이 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기업에 부담이 된다고 해서 사용자가 형사처벌받아야 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부와 한나라당이 전임자 임금이 지급되는 현상을 바꾸고 싶어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노사가 교섭해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노사 교섭으로 이루어낸 합의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한나라당, 20년 전, 30년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미 노동3권이 인정되고 신장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왔고,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거꾸로 가지 맙시다. 저는 21세기에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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