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의한 사회변화에 무게가 실린 '97년 체제론'을 주창하는 서강대 손호철 교수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퇴행적 양상에 주목한 '08년 체제론'을 강조하는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가 입을 모아 한 말이다.
하지만 손 교수는 "반MB의 추상화는 민주당의 노예가 되는 길"이라고 일갈했고, 조 교수는 "내 오른쪽에 비지론(비판적 지지론)이 있지만 반MB이면서 비지론으로 가지않을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을 찾는다"고 반박했다.
팽팽한 논쟁 끝에 손 교수는 "나는 반신자유주의에 방점이 찍혀있고 조 교수는 반MB에 찍혀있다"고 정리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도 이를 부정하진 않았다.
▲ 손호철 교수(우), 조희연 교수(좌) |
"97년 체제냐 08년 체제냐"
13일 서강대에선 지난 5개월 여 동안 온라인과 지면을 오가며 진행된 한국사회체제 논쟁을 총괄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프레시안>과 <경향신문>, <레디앙>이 후원한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20주년 기념 행사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불완전한 진전으로 열린 87년 체제 이후, 현재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한 97년 체제의 연속 하 있는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새롭게 시작된 08년 체제에 들어갔는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던 학자들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일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강조점은 여전히 달랐다. 이는 결국 김대중 정부를, 노무현 정부를,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바라 보느냐에 다름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 손-조 교수가 벌였던 '진보 논쟁'의 연장선으로, 이 논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진화를 거듭했다.
손호철 교수가 중심이 된 '97년 체제론'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사회가 김대중 정부의 주체적 판단으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됐고 본질적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조희연 교수의 08년 체제론은 87년 체제로 부족하나마 진전된 민주화가 보수세력의 집권으로 후퇴했다는 쪽이다. 이명박 정부가 과거 10년간의 정부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날 심포지엄에서 손 교수는 "반MB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며 "반신자유주의와 반MB를 복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97-08년 복합체제론(08년이 하위)'을 전제로 해 현실에 개입"할 것을 주문했다.
조 교수와 유사한 논지를 전개했던 서영표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사실 영국에서도 (보수당의) 대처와 메이저는 (과거를) 부수는데 성공한 것이지 신자유주의를 공고화한 것은 신노동당의 블레어이고 한국의 김대중과 노무현도 정확히 그렇다"고 과거 10년 간 신자유주의 심화를 수긍했다.
'민주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실천적인 측면에서 이들이 합의를 본 것은 아니었다. 조 교수는 사실상 민주당을 가리키는 말인 '자유주의세력'에 대한 "(진보진영의) '유연한' 헤게모니적 개입전략은 무엇인가 고민하자"고 말했고 플로어에 있던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 역시 "실질적으로 모든 모순이 결집하다시피 하는 반MB 전선을 쉽게 버릴 수 있냐"고 말했다.
하지만 손 교수는 "진보진영의 반대에도 중국에 쌍용차를 매각해 문제를 키운 노무현 정부, 당시 주무 장관이었던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있나"면서 '부평을 재선거에 전 한미FTA 지원단장을 공천해놓고 다같이 뭉치자던 민주당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고 맞섰다.
'비지vs후단' 대립 구도의 재연?
이같은 논쟁으로 인해 80년대 '비지론 vs 후보단일화론'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서영표 교수는 "손호철 선생이 87년 체제론을 비판하고 97년 체제론을 제시하는 이유는 소위 맹목적인 반MB론자들의 이론적 토대를 잘라내기 위한 것"이라면서 "87년 체제의 의미를 강조하는 이유는 '운동권'이나 '이론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의식 안에서는 87년의 '민주주의와 인권', 97년의 '신자유주의적 주체성', 08년의 '권위주의적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원 성공회대 연구교수도 "체제 논쟁이 선거전술 논쟁으로 축소돼 결국 어느 당 후보로 단일화할 것인가 여부로 귀결되는 것은 구래의 악습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참석자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87년, 97년, 08년이 모두 분절적이라는 데는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소장 정치학자는 "현재 논의 방식이 과거 NL-PD식 사생결단 구도와는 다르다"면서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대한 의견이 다르지만, 그건 또 각자 안고 갈 수 있는 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이 넘는 청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기가 뜨거웠다. 정치학자, 대학원생 등 전문가 그룹 외에도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민주당 김부겸 의원실 관계자도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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