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통과된 월성1호기 수명연장
"7명의 찬성과 2명이 기권한 것으로,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지난 2015년 2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30년의 수명을 다한 월성1호기의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최신안전기술 미적용 및 지진에 대한 안전성 확보 여부 등 월성1호기의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은철 원안위 위원장은 표결을 강행했다. 김익중 위원과 김혜정 위원은 제대로 심의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표결할 수 없다며 퇴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부와 여당 추천의 원안위 위원들은 미리 짜둔 것처럼 일사천리로 월성1호기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는 원안위 결정에 반발, 월성1호기 계속 운전 허가 무효를 밝혀내겠다며 국민소송을 추진하고 원고를 모집했다. 이들을 대신할 변호인단도 구성됐다. 환경법률센터, 탈핵법률가 모임 등 총 31명의 변호사들이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허가처분 무효 확인 국민소송대리인단'(단장 최병모 변호사)에 참여했다. 정남순 환경법률센터 부소장은 대리인단의 한 명이었다. 두 달 만에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원고로 참여했고 5월 18일 변호인단은 총 2167명의 원고들을 대신해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허가처분 무효 확인 등의 소장'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했다.
국민 안전보다 한수원 영업비밀 우선한 원안위
소장 접수 후 5개월 만에 첫 재판이 열렸다. 2015년 10월 2일 첫 재판이 열린 날, 원고 측 변호인들은 △ 운영변경허가 심의를 위하여 반드시 제출되어야 할 서류들이 제출되지 않았던 점, △ 운영변경허가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대한 심의가 없었던 점, △ 피고 위원장 이은철과 피고 위원 조성경이 결격사유에 해당하는바 결격자인 위원장이 소집한 회의에서 이 사건 처분이 의결된 점, △ 결격자인 피고 위원장 이은철과 피고 위원 조성경이 심의 의결에 참여하였던 점, △ 이 사건 처분을 위한 회의 당시 피고 위원 조성경에 대한 기피신청 기각이 위법한 점, △ 이 사건 처분이 심의된 회의 당시 피고 위원들의 심의, 의결권이 침해당한 점, △ 최신기술기준을 반영한 안전성 평가가 누락되었는데도 수명연장을 의결한 점, △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시 주민의견수렴절차를 위반한 점, △ 다수호기 동시사고로 인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결여한 점, △ 같은 캔두형 중수로인 월성 2, 3, 4호기에는 갖추고 있으나 월성1호기에는 없는 설비들이 다수인바 안전성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점, △ 피고가 스트레스테스트 실시 결과를 토대로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결정하겠다고 했으면서도 민간검증단의 검증 결과를 반영하지 않아 신뢰보호원칙을 위배한 점 등 11가지 위법성을 주장하며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가 취소를 주장했다.
위법성이 명백했지만 승소를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4대강사업 등 그동안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정부기관에 불리한 판결이 내려진 적이 거의 없는데다가 이번엔 핵마피아라 불리는 원자력계를 상대해야 하는 소송이었다. 더구나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한 소송은 우리나라에선 처음이었다.
10년 넘게 환경법률센터에서 환경 관련 소송을 맡았던 정남순 변호사에게도 원전은 쉬운 분야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전체 구조가 들어오고 세부적인 내용이 전체 구조에 어디에 들어가는지 확인되어야 이해가 쉽다. 하지만 이번 소송은 마치 코끼리가 있는데 코끼리 전체를 보지 못하고 코끼리 다리인지 꼬리인지만 계속 만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R-7이라는 게 코끼리의 다리인지 꼬리인지 파악하는데도 한참 걸렸다." 원전 관련 자료들이 전문적인데다 그동안 철저히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정부가 자료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겪은 그였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달랐다. 원고 측 변호인들과 증인으로 채택된 전문가들이 자료요청을 하면 피고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며 제공을 거부했다. 해당 자료가 한수원의 영업비밀이라 공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수원의 영업비밀과 국민의 안전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게 위원회의 역할 아니냐." 정 변호사는 한수원을 대변하는 원안위에 화가 났다.
원안위 심의 없이 사무처 과장이 대부분 전결
거듭된 원안위의 자료 공개 거부로 인해 결국 2016년 3월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실에서 원고 및 피고 측 소송대리인(변호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및 실무 담당자가 참여한 가운데 현장검증이 진행됐다. 원고 대리인들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1호기 수명연장 심사 및 심의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제출서류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단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2016년 2월 26일 월성1호기 계속운영 허가를 제외한 모든 운영변경허가가 사무처 과장 전결로 진행된 것이다. 원전의 신규운영허가 및 운영변경허가는 모두 위원회의 심의의결사항에 해당한다. 압력관 교체 등 원전의 설비교체도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원안위원들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사무처 과장 결정으로 진행된 것이다. 2016년 7월 21일 재판에서 원고 변호인단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 승인 당시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심사단장을 맡았던 성게용 부원장을 증인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그에게서 수명연장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운영변경허가를 원자력안전위원들의 논의 없이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가 결정해서 처리했으며 관련 자료는 원자력안전위원들에게 제출되지 않았다는 증언을 끌어냈다. 유일하게 원안위원들이 결정한 월성1호기 계속 운영 허가심의 때도 자료들이 제대로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절차상의 위법성은 더 확실해졌다. 이와 함께 변호인단은 전문가들을 증인으로 신청해 월성1호기의 안전성 문제도 집중 제기했다. 원전 안전해석과 중대사고 전문가인 박종운 교수(동국대 원자력에너지공학부)는 관련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심사과정에서 적용 기술기준을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선정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주)가 특수안전계통 내환경검증과정에서 심사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점, 설계기준도 만족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안전해석을 했다는 점 등을 증언했다. 지질전문가인 오창환 교수(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는 월성원전 1호기 부지 인근에 확인된 활성단층만도 61개인데 이를 배제한 최대지진평가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캐나다원자력공사에서 원전의 수명연장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실제 월성 2, 3, 4호기의 인허가 업무를 담당했던 하정구 씨는 "30년 된 월성1호기는 고철덩어리"라며 "캐나다에서는 절대 수명연장이 있을 수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법원 "월성1호기 계속 운영 허가 취소하라"
2년여 재판 기간이 흐르고 판결만 남은 시간, 판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월성1호기 계속 운영의 위법사항은 다음과 같다. 원자력안전법령에 의거해 계속운전을 위한 운영변경허가 심의의결에 필요한 비교표를 제출해야 함에도 제출되지 않았고, 피고 위원회가 운영변경허가사항에 대하여 적법한 심의 및 의결을 하지 않고 과장 전결 등으로 적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또한 원안위 위원 2명은 원안위법상 ‘최근 3년 이내 원자력이용자가 수행하는 사업에 관여하였던 사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결격사유가 있어 당연 퇴직하여야 하는 위원이 관여한 이 사건 의결은 위법하다.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평가에 원자력안전법령이 요구하는 최신 기술기준을 적용하지 않아 위법하다."
판사가 최후의 선고를 내렸다. "월성1호기의 계속 운전을 위한 운영 변경 허가는 위법하여 취소해야 한다."
방청석에서 법정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재판부가 원고 측 변호사들이 제기한 위법사항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고 측 변호인단 부단장인 김호철 변호사는 "다행스런 결론이 이르기까지 여러분들의 노고가 있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안에서 절대적 소수자이면서도 원자력 안전을 위해 분투노력하신 김익중 전 위원, 김혜정 위원이 없었다면 이번 수명연장 운영변경 허가 처분의 문제점들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 노력의 결실이 맺기까지 여러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자문과 조언이 있었다. 또한 이 소송을 원고들과 더불어 끝까지 잘 이끌어준 환경연합을 비롯한 여러 시민 단체들의 헌신적인 문제 제기와 활동이 있어 가능했다"며 승소의 기쁨과 감사를 전했다.
반신반의하며 판결을 기다렸던 정남순 변호사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적어도 이번 판결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에 구멍 하나 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 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판결 7일 후 원안위는 항소장을 제출했다. 자신들이 허가한 월성 1호기 계속운영 허가를 취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남순 변호사는 "(원안위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것들을 시정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법원의 판결을 엄중하게 받아들여 국민의 안전을 위한 원자력 규제 및 감시기관으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원안위의 태도를 비판했다. 국민 안전 탈핵 한국을 위한 두 번째 법정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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