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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통제 수준이 민주주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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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통제 수준이 민주주의 수준이다

[기고] 국가정보원, 국회가 통제하라 [上]

국가안보에 대한 내외부의 위험요소에 대해 꾸준히 정보를 수집, 분석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예방적으로 지키는 일은 인권 보장을 위해서도 가장 본원적으로 요구되는 국가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국내의 시민과 단체, 기관을 상대로 펼쳐지는 은밀한 정보 수집 활동은 몹시 엄격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권리 침해에 대해 적절한 고충 처리 및 권리 구제 절차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인권 침해와 정치 개입이라는 치명적 위험을 내장하고 있는 위험천만한 국가의 일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의 역사만 보더라도 어느 나라의 국내 정보기관도 그런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동독 슈타지 "모든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옛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비밀정보기관이 특히 악명이 높았다. 소련의 KGB나 동독의 슈타지가 대표적이다. 언젠가 통일 후 드러날 북한 비밀정보기관의 폐해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 틀림없다. 당시 슈타지는 '모든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목표로 움직였다. 통독 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슈타지는 동독의 1천600만 인구 중 무려 9만 명을 직원으로 직접 고용하고 17만 명의 전일제 협력자를 뒀다. 슈타지는 거의 6백만 명에 이르는 자국민에 대해 비밀정보파일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통독 후 동독인들은 자신에 대한 비밀정보파일을 열람하고 깜짝 놀랐다. 주변에 알만한 이들이, 심지어는 목사나 교사까지도, 슈타지의 협력자로 포섭돼 자신을 엿보고 엿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KGB나 슈타지 등 악명 높은 비밀정보기관들은 국내외정보기관을 겸하고 있는데다 수사권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공포기관이자 권력기관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사권을 갖지 않고 국내외정보기관이 분리된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비밀정보기관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국가안의 국가로 군림하며 비밀의 장막 안에서 못된 짓을 해온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서냉전으로 이념대립이 강하던 시대에는 선진국 국내정보기관들도 좌파활동가나 노동정치단체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불법 사찰과 조작을 일삼았다. 미행과 도청은 기본이고 사무실 잠입, 서류 절취, 조직원 침투 등 온갖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았다.

CIA 스캔들 이후, 미국 정보기관에 대한 강력한 의회 통제 모델

정보기관의 불법 행태에 대한 법치주의적 통제에 앞장선 나라는 미국이었다. 1960~70년대에 FBI와 CIA의 스캔들이 계속 이어지자 미국은 하원에서 파이크 청문회를, 상원에서 처치 청문회를 열고 그 산물로 1976년과 1977년에 상원과 하원에 각각 정보위원회를 만들어내고 전문보좌인력을 붙였으며 철저한 예산 통제를 관철시켰다.

한마디로 미국은 정보기관에 대한 강력한 의회 통제 모델을 선보였고 실효성을 높여왔다. 그 결과 미국의회의 정보위원회는 어느 나라 정보위보다 막강한 권한을 자랑한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제 국가안보를 핑계로 의회의 예산 통제와 공작 감시를 피할 길이 없다. 여기저기 구멍이 남아 있더라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한 국가안보 원칙이 비로소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 가입하려면 비밀정보기관부터 민주적 개편하라

유럽에서 정보기관 개혁이 중요해진 역사적 계기는 동구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붕괴와 함께 찾아왔다. 동구권 각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비밀정보기관의 실상이 가감 없이 공개되며 개혁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사정도 작동했다. 동구권 국가들은 서구에 편입되기 위해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길 원했다. 그러려면 유럽인권조약을 비준해야 했고 먼저 군대와 경찰, 비밀정보기관을 민주적으로 재편해야만 했다. 유럽평의회는 동구권의 민주이행기에 필요한 안보 부문 개혁 기타 헌법사안 자문을 전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해인 1990년에 이미 유럽각국의 최고 헌법전문가로 베니스위원회를 구성한다. 이렇게 해서 유럽평의회는 동구권 정보기관의 민주적 개편을 자신의 과제로 떠안는다.

지금까지 베니스위원회는 광범위한 연구조사와 풍부한 자문 경험을 토대로 비밀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보고서 3건을 유럽평의회의 공식문건으로 발표한다. 첫 보고서는 국내정보기관에 대한 것으로 1998년에 나왔다. 2007년에는 좀 더 범위를 넓혀 국내외정보기관에 두루 적용되는 본격적 보고서를 냈다. 지난 2015년3월 베니스위원회는 '신호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보고서를 공개한다.

아산지, 스노든 폭로로 드러난 진실슈타지 넘어서는 감시사회

아산지와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등 주요국의 신호정보기관이 테러방지를 위해 국내외의 이메일과 SNS까지 무차별적으로 감시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이 부분에 대한 규범적 평가 및 통제방안 제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베니스위원회는 2015년 보고서의 핵심내용을 2007년 보고서에 반영해서 2015년 증보판을 낸다. 이 보고서는 정보기관 통제법의 전범으로 통한다.

구동독의 슈타지 등이 1970~1980년대에 사용했던 도청과 미행 등 감시기술은 정보통신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감시기술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마다, 특히 구글 등 검색엔진이나 위치 정보를 사용할 때마다, 숨어있는 눈이 우리의 활동흔적을 샅샅이 기록한다. 길거리와 빌딩, 작업장에 감시카메라는 기본이다. 현재 웬만한 국가들에서 시민들에 대해 행해지는 국가감시의 수준은 질과 양에서 모두 슈타지가 꿈꿨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21세기 현대국가들의 불편하고 무서운 진실 중 하나다.

9.11 이후,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진입

9.11 참사 이후 많은 나라들의 비밀정보기관은 테러방지활동을 위해 모든 이메일과 SNS 등을 자유롭게 접근할 법적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미국 CIA가 대표적이지만 우리나라 국정원도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 아래 크게 다르지 않다. 고도의 발전된 감시기술을 활용하는 비밀정보기관 탓에 현대국가들은 이미 어디서나 보는 눈이 있는 '감시사회' 혹은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진입했다. 당연히 비밀정보기관의 무차별적 침해 가능성에 맞서 개인정보인권과 알권리를 보장할 필요성도 덩달아 커졌다.

9.11 참사 이래 정보기관들의 대테러 정보수집활동이 강화되면서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유엔인권이사회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이에 유엔은 2005년, 핀란드의 마틴 샤이닌(Martin Scheinin)교수를 '대테러 활동과 인권 보장, 특히 정보기관의 통제에 관한 특별보고관'으로 임명한다. 샤이닌 교수는 정보기관의 통제에 관한 세계 각국의 입법적, 실천적 노력을 섭렵한 후 2010년, '정보기관 통제 모범사례집'이라는 형식으로 25개의 권고안을 발표한다. 주요 선진국들도 지난 20년 간 자국의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입법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미국, 독일,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대표적이다.

정보기관 통제 수준이 민주주의 리트머스 테스트

유엔과 EU, 주요선진국들의 비밀정보기관 통제 입법 및 실천 동향을 연구하다보면 정보기관 통제의 성공여부야말로 한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 보장의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테스트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지난 20년간 국제사회에서 내놓은 비밀정보기관 통제 관련문헌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 벅차오르는 느낌을 갖곤 했다. 비밀정보기관이 필수불가결한 국가기관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칫 비밀의 장막 안에서 국가안의 국가로 군림하며 정권안보와 인권침해에 나서지 못하도록 감독체계를 강화하려는 모습에서 법치주의와 인권보장에 대한 진지한 사명감과 지독한 집념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과 자원고갈이 심화되고 테러 활동 등 다양한 안보 위협이 새롭게 대두되면서 정보기관의 역할과 권한 강화가 당연하게 수용되는 지금의 추세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욱이 정보기관이 동원 가능한 감시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실효성 확보가 더욱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안보와 인권보장, 밀행성과 투명성의 충돌을 인권과 투명성 쪽으로 새롭게 균형 잡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지는 더 되풀이할 필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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