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대선 출마에 따른 도지사직 사퇴 후 보궐선거는 없게 하겠다고 연일 강조해 '정치적 꼼수'(지난 20일자 보도)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홍 지사는 20일 경남도 간부회의에서 "제가 지사를 사퇴하면 쓸데없는 보궐선거 비용이 수백억원 들어간다"며 "(대선) 본선에 나가기 직전 사표를 제출하면 (도지사) 보궐선거는 없다"고 말했다.
홍 지사의 '보궐선거 없음' 전략은 사실 당혹스러운 측면이 많다. 누구도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자기보호막' 같은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결과에 따라 오는 4월 9일까지 현직 사퇴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다른 현역 지자체장 대선 후보들 입장에서도 눈이 번쩍 뜨일 수 있다.
논란의 핵심은 공직선거법에 사퇴 시점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203조에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연도에 지방자치단체장의 보궐선거가 있을 땐 동시에 실시하고, 지자체장의 보궐선거는 선거일 30일 전까지 실시 사유가 확정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조기 대선이 오는 5월 9일이므로, 대선 후보로 본선에 나서는 지자체장은 4월 9일까지 사퇴를 해야 한다. 그러면 보궐선거 실시 사유가 확정된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후보는 오는 31일 결정된다.
문제는 선관위에 사퇴를 통보하는 시점이다. 공직선거법 제200조에는 지자체장의 사임으로 직무를 대행하는 자가 지방의회 의장과 관할 선거구 선관위에 통보해야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홍 지사가 만약 3월 31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도지사직 사퇴를 미룰 수 있다. 대선 전 30일 규정에 따라 4월 9일 도지사직 사임을 도의회 의장에게 통보하더라도 다음날인 4월 10일에 경남도선관위에 통보하게 되면 보궐선거는 없게 된다. 보궐 선거 실시 사유 확정 기간인 30일을 넘기기 때문이다.
홍 지사는 자유한국당에서 여론조사 1위 후보다. 그러나 10% 안팎의 낮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 홍 지사가 '한국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높지만,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그리고 홍 지사가 만약 한국당 후보로 확정돼 대선에 뛰어들고 '꼼수'를 부리지 않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가 확정된다면, 한국당이 이 자리를 다시 차지할 가능성도 미지수다. 홍 지사가 '꼼수'에 목매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관위 '꼼수'에 속수무책?
선관위도 이 부분에 대해 인정했다. 경남도선관위도 21일 "보궐선거 사유 확정일은 선관위가 사임 통지를 받은 날을 기준으로 한다"고 확인 요청에 답했다.
도선관위는 이어 "4월 9일이 선관위가 근무하지 않는 일요일이라 하더라도 도지사 권한대행인 행정부지사가 '전자문서'로 사퇴 사실을 이날 통보한다면 보궐선거 사유가 확정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직무대행 체제의 경남도가 홍 지사의 뜻을 거스르고 곧바로 통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도지사가 사임하려면 사임일 10일 전까지 도의회 의장에게 사임일을 적은 사임통지서를 내도록 규정한 지방자치법 제98조와 시행령 65조는 이번 대선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전망이다.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조항 때문이다.
지방자치법 소관 부서인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과는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서 조항에 관한 문제"라며 더 이상의 답변을 회피했다. 또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행자부에서 경북도에 이번 조기 대선의 경우 예외로 해 이달 31일 이후 사임을 알리더라도 법 위반이 아니라고 통보했다.
검사로서 법조인 출신인 홍 지사가 미리 이런 부분에 대해 세밀하게 검토해 '보험성 전략'으로 제시했을 가능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홍 지사의 입장에서는 특유의 웃음이 입가에 머물 수도 있다. 미리 계산된 셈법에 따라 별다른 큰 저항 없이 자신의 '속내'를 관통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정 공백 1년3개월에 대한 우려와 자신이 한 도민과의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는 비판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홍 지사는 보궐선거 비용이 많이 든다며 자신의 전략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반면, 도민들은 도정 공백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 도민들은 "비용이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아예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한다.
또 홍 지사는 지난 2012년 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도지사직을 끝까지 수행하겠다. 경남의 발전을 위해서 경남에 온 것이다. 중도 사퇴 없이 도민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도민들에게 한 약속마저도 스스로 어기려고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홍 지사가 대구와의 인연을 거론하며, 대구서문시장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것도 이런 비판과 맥락을 같이 한다. 홍 지사에게 경남도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속내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며, 스스로 이미 경남을 떠났다는 것이다.
경남지역 정치권의 비판 목소리도 이어졌다.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과 노동당 경남도당에 이어 21일 정의당 경남도당도 홍 지사 때리기에 가세했다.
정의당 경남도당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 지사의 발상은 법 위에 군림하려는 쿠데타적인 것"이라며 "의도적인 보궐선거 방해 행위"라고 규정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더니, 홍 지사는 경남도정을 농단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홍 지사의 숨은 속내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정의당 경남도당은 "보궐선거 원천봉쇄 의도는 홍 지사와 자유한국당이 도정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술책"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대선과 함께 도지사 보궐선거를 치른다면 자유한국당은 승산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홍 지사는 대선 이후에도 도정을 장악하고 있는 자신의 인맥을 뒤에서 조종하려는 '최순실표 상왕정치'의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며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자신과 당이 재집권 하려는 정략적 술책을 접고 당장 도지사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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