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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간의 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②떠나자, 동북아로!

파릇파릇 햇순으로 짙어진 치악산 끝자락을 추니와 하루 두세 시간 가량 오르내리지만 먼 길 여정에 비하면 동네 한 바퀴에도 미치지 못했다. 체력은 단기간에 좋아지는 게 아니라서 가능하면 매일 자전거를 타려 하지만 피곤하다고, 비 온다고, 간밤에 술 마셨다고 건너뛰기 일쑤다. 여행하다 보면 피곤한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을 텐데 그때마다 달리지 않으면 어찌 될까?

자전거 뒤에 부착할 한 뼘 크기의 오렌지색 삼각 깃발에 ‘수상한 여행’이란 글자를 새겨 넣었다. ‘수상한’이라는 제목은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착안했다.

어떤 칠순 할머니가 우연히 ‘청춘 사진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아리따운 이십대 여성으로 변해 젊음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게 되는 코믹 스토리인데, 우리의 여행 컨셉과 맞았다.

서울 인사동에서 작은 탁상용 태극기와 오성홍기, 일장기를 구입해 자전거 핸들에 플라스틱 장치를 만들어 꽂았다.

바람에 펄럭이며 동북아 지역을 횡단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뿌듯했다.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했고, 행여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의연하게 처신하려는 다짐이기도 했다.

티셔츠 가슴에는 한·중·일 국기 명찰을 제작해 나란히 부착했다. 우리가 왜 이 루트를 달리고 있는지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표식이기도 했다.


▲기념소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티셔츠.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우리의 이동 구간을 표시한 현수막에 ‘자전거 동북아 대장정, 화해와 배려’란 문구를 한글과 한자, 일본어로 번역해 넣었다. 주요 기착지인 시안, 베이징, 히로시마, 그리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펼치고 싶다.

여행하다 사람들을 만나 신세를 지거나 서로의 정을 나눌 때 쓸 기념품으로 풍선 천 개와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념 배지 삼백 개, 소중한 인연을 상징하는 청실홍실, 그리고 젓가락, 부채, 핸드크림, 연필도 준비했다. 꽤 무거웠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병기한 여행용 명함도 추니 이름을 함께 넣어 만들었다.

▲기념소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기념소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기념소품.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명함.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출국 전까지 어금니 신경 치료를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모기약, 소화제, 파스, 감기 몸살 약, 피부가 짓물러 가려울 때 바르는 연고도 챙겼다.

넘어져 찰과상을 입었을 때 바를 소독약과 붕대, 약솜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혹시 몰라 추니가 작년에 먹다 남은 척추협착증 약도 한 보따리 챙겨 넣었다.

자전거를 점검해 보니 닳아서 교체했던 자전거 체인이 제 몸에 맞지 않는지 계속 절그럭거리며 헛도는 바람에 페달을 돌리는 크랭크와 뒷부분 9단 기어를 통째로 바꿔야 했다.

펑크에 대비해 땜질 패치 한 통과 튜브 두 개, 야간 라이딩 때 사용할 깜빡이와 스마트폰 거치대, 그리고 공기 주입용 펌프도 새로 구입했다. 가방 부착용 거치대와 짐받이는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말이 통해야 될 텐데 걱정이다. 중국어 회화 책을 몇 장 넘겨보니 음절 위에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체크 표시가 되어 있는데 통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국어를 잘하는 동료가 처음 시작할 때는 선생님의 지도를 꼭 받아야 한다고 해서 여행을 떠나기 전, 무실동 학원에서 한 달 동안 발음을 공부하고 혼자 집에서 5개월 동안 하루 한 시간씩 자습을 했다.

아침마다 맑은 정신으로 몇 개의 문장을 암기하지만 오후가 되면 어느새 머릿속에 있던 게 다 새어 나가 버렸다. 출발 날짜가 다가오는데 이제 겨우 ‘베이징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요, 이거 얼마예요, 너무 비싸요, 좀 깎아 주세요.’ 정도를 근근이 입 밖에 꺼낼 정도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이 정도가 나의 한계다. 그나마 믿을 건 손짓 발짓뿐이다. 다행히 일본어는 젊었을 때 직장에서 배울 기회가 있어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을 따 놓긴 했다. 그동안 장롱 속에 잘 보관해 두기만 했지만.

7월 1일. 삼성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화면에 ‘error’ 표시가 나타나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마쳤다. 만일 중국 소도시를 달리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됐을까? 차라리 미리 고장 나 줘서 고마웠다.

이 카메라는 스마트폰과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어 화질 좋은 사진을 SNS에 곧바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동안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인터넷은 ‘원패스’라는 1일 구천 원 지불 조건의 무제한 이용 서비스에 가입했다. 길을 찾으려면 하루 종일 인터넷에 접속해야 하는데 수시로 페이스북과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도 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떠나자, 동북아로!

여행하는 김에 한·중·일 3국에서 부부 한 쌍씩 동반으로 라이딩을 하면 상징적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초부터 중국과 일본의 자전거 관련 단체에 메일을 보내고, 언론 보도를 통해 우리의 뜻을 전파했지만 여행 기간이 너무 길고 이동 구간이 멀어서 끝내 성사되지는 못했다.

또한 북한 지역 통과를 위해 언론 보도와 병행해서 관계 기관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연초부터 악화된 남북 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 북한 지역 통과도 다음으로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언젠가 임진각에서 신의주까지 국도 1호선을 따라 자전거로 달리는 기회가 오기를 소망한다.

코스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출발은 2015년 8월 1일. 자전거를 박스에 넣어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 산시성 시안으로 간다.

그곳에서 자전거를 다시 조립해 시안 고루(鼓樓) 광장을 출발해 황하 유역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해 달리다가 도중에 베이징을 들른다.

이어 발해만 연안을 따라 거슬러 랴오닝성 선양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다.

도쿄에서 다시 페달링을 시작해 오사카를 경유해 히로시마까지 달린다. 그리고 배를 타고 한국 동해항으로 건너와 최북단 접경 지역인 DMZ 평화누리길을 횡단해 최종 10월 3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총 석 달간, 약 4,200km의 여정이다.

‘과연 예정된 루트를 따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나기도 했지만 그런 염려는 시간 낭비일 뿐 도움이 안 되기에 애써 잊으려 했다. 걱정 때문일까. 여행을 앞두고 유난히 새벽에 일찍 잠이 깼다.

며칠 전 행정자치부와 강원도 원주시로부터 후원 명칭을 사용해도 좋다는 공문을 받았다. 이는 정부의 공식 후원으로 자긍심을 갖고 떳떳하게 달리고 싶어 우리가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출발 일주일 전,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호텔에서 재정적 후원 의사를 보내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리의 여정이 메르스 사태 등으로 꽁꽁 얼어붙은 관광 산업의 활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행정자치부 차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7월 31일 오후. 자전거를 분해해 박스 포장을 했다. 자전거 타이어는 비행 중에 기압 차이로 인해 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기를 모두 뺐다. 핸들 가운데 고정 핀을 풀고 옆으로 돌려 부피를 줄였다.

박스에 자전거를 먼저 넣은 뒤 빈 공간에는 헬멧, 옷가지, 기념품 등 가벼운 물건과 규정상 기내로 갖고 들어갈 수 없는 화장품 등으로 채웠다. 저울에 올라 내 몸무게를 측정한 뒤 다시 박스를 들고 측정해 보니 총 93kg이였다. 소화물 무게 제한 23kg를 초과해 기내 반입 품목을 더 늘렸다.


▲짐싸기.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짐싸기.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부엌 싱크대에 올려놓고 애지중지 키워 온 이름 모르는 풀꽃이 드디어 우리가 짐 싸는 날 아침에 꽃을 피웠다. 꽃이 콩알만 한 게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없지만 꽤 귀엽다. 내일부터 먼 길 떠나는 줄은 어떻게 알았을까?
“너희들 석 달 동안 잘 지내라. 물속에 텀벙 담가 놓을 테니.”


▲작은 꽃.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행작가

우린 자전거 집시 부부예요

우리의 여행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적어 동료에게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장 복사해서 현지에서 대화하다가 필요할 때 얼른 보여 줘야겠다. 아래는 우리의 여행 소개서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에서 온 최광철, 안춘희 부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유럽 5개국을 석 달간 여행했고 올해는 한국·중국·일본, 동북아 3개국을 횡단하고 있답니다.

8월 1일 중국 시안에서 출발해 베이징을 경유해 선양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로 건너가 나고야, 히로시마를 경유해 사카이미나토항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갈 예정입니다. 총 석 달간의 여정입니다.

우리 동북아 지역 사람들은 벼농사를 짓고, 한자를 사용하며,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와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동북아 여행에서 따뜻한 이웃의 정을 듬뿍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 입니다. 과거의 아픔은 화해로 풀고 현재의 갈등은 배려로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기회가 되면 아름다운 한국에 꼭 놀러 오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만남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자전거 보헤미안 최광철, 안춘희


您好!
我们是来自韩国的一对夫妇、崔光澈和安春姬。我们骑着自行车周游世界。
去年我们用三个月的时间起着自行车旅行了欧洲的五个国家、今年将横渡韩国、中国、日本这三个东北亚国家。
8月1日从中国西安出发经由北京前往沈阳然后在沈阳乘飞机前往东京。从东京经由名古屋、广岛等城市最后在境港乘船回韩国。整个旅程需要三个月的时间。
东北亚地区的人都种植水稻、使用汉字、使用筷子、从历史上拥有相同的根源并生活在同样的文化圈里。我们真心希望在此次东北亚自行车旅行中能够分享我们彼此间温馨关爱。
尤其今年是光复70周年具有特殊意义的一年。我们认为过去的疼痛应该用和解来融化、当今的纠纷应该用理解和谦让来解决。
若有机会、欢迎您到美丽的韩国来作客。我们一定会珍惜这段宝贵的缘分。祝您幸福到永远。

自行车流浪人 崔光澈、 安春姬


こんにちは、はじめまして。
私たちは韓国からきたチェ・グァンチョル、アン・チュニ夫婦です。自転車に乗って世界一周をしています。昨年は3ヶ月をかけヨーロッパの5ヶ国を旅行しました。今年は韓国、中国、日本の東北アジア3ヶ国を横断しています。
8月1日中国の西安から出発し北京を経由して瀋陽まで行きます。そこで飛行機に乗って日本の東京に渡り、名古屋、広島を経由して境港で船に乗って韓国に戻って行く予定です。 合わせて3ヶ月間の旅程です。
東北アジア地域の人々は米作りをし、漢字を使い、お箸で食事をするなど歴史的に同じ根と同じ文化の中に生きています。私たちは今回の東北アジア旅行で暖かい隣り合いの情けをたっぷり分かち合うことができ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特に今年は光復70周年になる意味深い年です。過去の痛みは和解で晴らし、現在の葛藤は配慮をもって解決していくべきだと思っています。
今後機会がありましたらぜひ美しい韓国においでください。私たちは今回の出会いの縁を大切に存していきます。どうぞお幸せに!
バイク ボヘミアン チェ・グァンチョル、アン・チュ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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