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불복하는 태도를 보이고, 자유한국당 내 일부 친박계 정치인들이 이에 동조하고 나선 데 대해 정치권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전통적 야당은 물론, 보수 성향인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일각에서도 향후 차기 대선 등의 국면에서 보수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13일 오전 원내지도부 회의에서 한 공개 발언을 통해 "자유한국당 친박 의원들이 극우 수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며 "헌재 결정에 불복하고 거짓 사실을 유포해서 수구 보수 세력을 다시 재결집하는 걸로 향후 방향을 잡은 것은 역사의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우 원내대표는 "한국당 내에서 이 친박 진영과 동거하는 어정쩡한 정치인들도 이들과 함께할 것인지 결별할 것인지 결단을 해야 한다"며 "용기가 없어 못 나오는 것도 옳지 않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민은 친박-비박을 넘어 '삼성동계'라는 새로운 계파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수석부대표는 "'계파 청산' 코스프레를 하더니 기어이 반성은커녕 새 계파를 창출한 한국당의 민낯을 국민은 신뢰할 수 없다"며 "새롭게 '삼성동계'임을 선언한 김진태 의원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 호위 무사 노릇을 하려면 법사위 간사직부터 내려놓으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소위 '사저 비서실 8인방'과 어떤 정치적 도모를 하고 검찰 수사에 대비하겠다는 것은 국민과 역사의 흐름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파렴치한 일"이라고 맹비판했다.
박 대표는 이날 평화방송(CBP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들 '삼성동계' 친박들이 YS나 DJ의 측근 그룹과 비교되는 데 대해 "동교동계든 상도동계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퇴임했어도 모여서 식사나 하고 토론했다"며 "이렇게 업무를 분담해 마치 '사저 비서실'을 만들고, 더욱이 파면된 대통령이 역사에 항거하고 국민에 항거하고 정치를 재개하려는 모습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상임대표는 이날 SNS를 통해 발표한 메시지에서 "통합은 민주공화국의 원칙 아래서만 가능하다"며 "친박 의원들의 박 전 대통령 집단적 보좌는 심각한 국론분열 행위다. 현직 국회의원들이 법치를 부정한다면 이 또한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을 상대로 한 진지전은 헛된 망상"이라며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깨는 통합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안 전 대표는 "2004년 10월 수도 이전 위헌 판결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헌법에 도전하고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13년 전 박 전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며 "지금이라도 헌재 결정에 대한 분명한 승복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13년전 발언 "헌재 불복, 헌법과 체제 부정")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 아니라 삼성동의 박근혜가 구 여권의 중심이 되었다"며 "제가 볼 때는 박 전 대통령의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보지만, 아직까지 미련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화를 가지고 권좌에까지 올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재의 잘못된 유산을 가지고서 다시 세력을 재기하려는 그런 허망한 생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데 꿈에서 깨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수 쪽에서도 비판 "朴불복 때문에 대선에서 중도층까지 이반한다"
보수 성향 야당인 바른정당의 정병국 전 대표는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탄핵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 정당' 같다는 생각"이라며 "탄핵 자체에 대해서 불복을 하는 박 전 대통령을 호위무사가 돼 가지고 지키겠다는 소위 '진박'들의 태도를 보면서 국민이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전 대표는 "보수의 가치를 지킨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법치"라며 "결국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니냐. 결국 우리 보수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해야 될 것은 이런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다 승복하고 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 논리에 빠져 있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보수를 궤멸시키는 것"이라고 위기감을 보이며 "그런 보수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대선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용태 의원도 YTN 라디오 방송에 나와 "현역 국회의원이, 지금 어떻게 청와대를 나온 지 얼마 됐다고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대변인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저런 정치를 하는 것이 국민들한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명약관화하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 역시 '보수의 미래'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불복'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삼성동계') 본인들 입장에선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을 동정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분들의 지지를 받아서 권토중래를 하겠다는 말인 것 같은데, 이것이 얼마나 보수 전반에 대해서 극약으로 작용할지 참으로 걱정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차기 대선 구도와 관련해서도 "선거라는 것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아가기 마련인데, 물론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불복에 대한 모습을 보면서 중간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조차도 '더 이상 안 되겠다' 이런 생각들을 갖게 되지 않을까 오히려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나경원 의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에 남아 있는 비박계들은 친박들이 어제 비서진을 꾸리고 한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속상해하고 있다"며 "지도부가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징계와 해야 될 일을 해야 된다. 명백한 해당 행위"라고 주장헀다. 나 의원은 "우리가 분명히 당론으로 헌재 결정에 승복하자고 했는데, 지금 일부 친박들의 행위는 결국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라며 징계를 주장했다.
심지어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사들 사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홍문종 의원은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헌재 결정은) 정무적 판단이 들어가 있는 판결"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러나 지금 국회의원으로서, 자유한국당 당원으로서,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헌재 판결을 존중하고 다음 단계로 나갈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로 지명됐던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도 불교방송(BBS) 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승복' 요구에 대해서 "완전 항복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탄핵 불복 발언을 하는) 그 분들이야말로 그러시면 안 된다. 어쨌든 나라가 이렇게 되어 있지 않느냐"며 "불복하는 것은 모습이 국민들한테 눈에 띄도록 하는 것은 저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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