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니’와 처음 자전거를 같이 타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됐지만 먼 곳으로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된 건 불과 5년 정도다. 자전거 여행이라고 해 봤자 고작 일 년에 한 번 주어지는 하계휴가 때 캠핑 장비를 싣고 어설프게 국내여행을 떠난 정도였다. 첫 해는 춘천에서 출발해 해남 땅끝마을로, 이듬해는 부산 을숙도로, 그 다음해는 강화도를 찍었다.
2014년 6월 말 공직을 퇴직하고 유럽 5개국을 석 달간 횡단하고 돌아왔다. 공직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길들여지려는 사회 적응 프로그램치고는 무모한 자학적 처방이었다. 이후 다시는 그와 같은 험난한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유럽 여행기를 출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인터넷 지도를 열고 다음 여행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으니 역마살이 낀 게 분명하다.
이제는 좀처럼 가슴 뛰고, 스릴 넘치는 곳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행은 아내와 같이 가지 말라’는 명언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여행하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툭하면 티격태격했다. 그 다툼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푸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취미가 같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나이 들수록 아내와 취미를 같이 하는 게 좋고,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다.”라는 주변의 조언들을 묵묵히 받아들여 점점 성깔 푹 죽이며 공처가로 길들여졌다.
이른 봄부터 구글 지도를 열고 마우스 여행을 떠났다.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해안선을 따라 멕시코로 내려왔다가는 다시 캐나다 국경을 지나 멜버른으로 향했다.
이어 방향을 틀어 벵골만 인도에 도착해 북쪽으로 올라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달렸다. 자전거 세계 일주가 마우스 여행처럼 이렇게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자전거 여행 경험담을 읽고, 세계 지도를 펴 놓고 위도상의 지형 정보들을 읽어 내려갔다. 기후와 종교, 문화 유적과 역사들을 겉만 보고 다 아는 듯 슬슬 지나치다가 마침내 중국 대륙의 한가운데서 마우스 커서가 멈췄다.
‘앗! 그래, 이곳이다. 시안, 비단길의 출발점.’
중국 산시성 동경 108도, 북위 34도에 위치한 이곳은 옛 장안이다.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사신 ‘장건’이 말을 타고 험준한 파미르 고원을 넘고 사막을 건너 서역으로 떠났던 곳이다.
이 길을 통해 동서무역로가 열려 진귀한 물품이 교류되고, 종교와 예술이 전해지면서 새로운 동서 문명을 꽃피우는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동방으로 비단길을 열자! 장건이 시안에서 출발해 서방으로 비단길을 개척했다면 우리는 시안에서 출발해 동방으로 비단길을 열자. 그곳에서 동쪽으로 달려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관통하자.’
동쪽으로 가는 길은 많지만 오직 한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길을 들어갔다가는 빙빙 돌아 되돌아 나오길 반복했다.
앗! 이게 능선일까, 물길일까, 아니면 깊은 계곡일까? 중국 시안에서 2~300km 지점에 갑자기 고사리 잎사귀 모양의 흉측하게 생긴 지형이 나타났다. 허어, 이건 또 뭐야? 남북으로 길게 뻗은 검푸른 산맥이 앞을 가로막았다.
한 뼘 모니터 속에서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며 동녘으로 향하다가 한반도에 다다르자 갑자기 구글 지도는 흐려졌다.
중국에서 산악을 넘다가 잘 곳이 없으면 어쩌지, 치안은 괜찮을까. 외진 곳에서 자전거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식사는, 그리고 언어는?
“중국에서 한눈팔면 순식간에 자전거를 훔쳐갈 겁니다. 또 밤늦게 외진 곳에 가지 마세요. 장기를 적출 당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거드는 조언들은 목을 뻣뻣하게 했다.
중국 시안을 떠난 마우스 여행은 황하 유역을 가로질러 베이징에 잠시 들른 후 다시 동쪽으로 핸들을 돌려 발해만에 도착해 연안을 따라 압록강에 이르렀다.
‘흐음. 한반도를 자전거로 통과하자.’ 압록강 건너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전라남도 목포까지 이미 연결된 약 1,000km의 길은 한반도의 대동맥인 국도 제1호선이다. 신의주에서 임진각까지 달릴 수만 있으면 이 길은 중국 시안에서 우리나라 목포까지 자연스럽게 비단길이 연결되는 셈이다.
‘북한 지역을 통과하려 하다니 지금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남북한 당국으로부터 방북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리 순수한 자전거 여행이라지만 성사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여겨지지만 대의를 품고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언젠가 누군가 닫힌 문을 두드리고, 그 문을 열고 달려야 한다면 우리가 그 길을 처음으로 달리고 싶었다.
한반도 끝에서 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건너갔다. 일본의 중앙부 혼슈를 북동에서 남서로 가로질렀다.
‘여행 중에 태풍이 오면, 혹시 지진이 발생하거나 화산이 분출하면 어쩌지?’ 혼슈는 지도상 높은 산맥이 달리고, 굴곡이 심한 해안도로는 자주 끊겨 있었다.
갖가지 걱정과 열정이 교차하면서 고민은 깊어만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도 위 루트는 형광펜으로 점차 두터워졌고, 무모한 도전 욕구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용솟음쳤다.
그렇다.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여정에서 예상되는 모든 문제들을 미리 알 수도 없고 해결 방법을 마련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달리다가 타이어가 펑크 날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지쳐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들르고 싶은 곳, 식당, 잠을 잘 곳을 미리 예약할 수도 없다.
그게 자전거 여행이다. 달리다가 배고프면 식당을 찾고, 해 저물면 잘 곳을 찾아야 한다. 길을 잃으면 인연을 기다리고, 인연이 닿지 않으면 때에 이르지 못했음을 안다. 그게 바로 자전거 보헤미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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