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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3월의 고성인물 ‘제정구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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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3월의 고성인물 ‘제정구 선생’ 선정

도시 빈민의 생존권·인권 보호운동을 전개한 빈민운동가

경남 고성군은 일생동안 도시 빈민의 생존권·인권 보호운동을 전개한 빈민운동가 제정구 선생(1944∼1999)을 2017년 3월의 고성인물로 선정했다.

제정구 선생은 경남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척곡마을)에서 태어나 고성에서 대흥초등학교, 고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6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제정구 선생은 1972년부터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했고 1977년, 정일우 신부, 양천동 철거민들과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로 이주해 빈민공동체인 ‘복음자리 마을’을 건설했다.

▲ 반민운동가 제정구 선생.

뒤이어 1979년 시흥동 등의 철거민들과 함께 ‘한독마을’을 지어 신·구교 공동기구였던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도시주민분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84년 빈민운동의 대표자격으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중앙위원으로 민주화투쟁에 참여했다.

1985년 3월,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뒤에 천주교도시빈민회로 개칭)를 창립해 초대 회장으로, 그리고 11월에는‘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이와 같은 활동에 따라 1986년 2월에는 정일우 신부와 함께 필리핀 정부가 수여하는 ‘막사이사이상’ 지역사회지도 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1987년에는 판자촌 강제철거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공동대표를 맡아 6·10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1988년에는 태국 방콕에서 발족한 ‘민중주거쟁취 아시아연합(Asian Coalition for Housing Rights)’에 정일우 신부와 함께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89년에는 ‘아시아 도시빈민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으며 1991년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의 사무총장을 맡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의 공천(경기도 시흥·군포 선거구)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통합민주당)에서 재선됐으며,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에 합류해 활동했다.

1999년 사망한 뒤 민주화와 도시빈민을 위해 투쟁해 온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 받았다.

최평호 군수는 “우리 군이 배출한 훌륭한 인물을 재조명하고 인물의 고장 ‘고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달의 인물을 선정하게 됐다”며 “군민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군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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