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이 큰 갈등을 빚었던 자살보험금 문제를 둘러싸고 일단 금융당국이 예고한대로 보험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않고 버틴 일부 보험업체들에 대해 중징계를 의결했다.
자살보험금 문제는 "피보험자가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후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약관에 포함된 보험상품에 대해 보험업체들이 "실수로 들어간 것"이라면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약관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 2007년에 나왔는데, 보험업체들이 10년을 버틴 것 때문이다. 금감원이 약관을 준수하라면서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압박하자, 일부 업체들은 보험업법상 약관준수가 의무화된 2012년 이후에 청구된 자살보험금 중 '소멸시효 2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에만 지급한다는 '일부지급'으로 지급해야 할 보험금 규모를 최대한 줄이려고 애를 썼다. 소송까지 걸어 지난해 9월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내세운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약관대로 지급해야할 보험금을 제때 안주고 버티다가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약관준수 의무가 법으로 규정된 이후에만 지급한다는 것은 행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금융당국으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ING는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당했다.
자살에 대해 재해사망특약 상품을 판매한 14개 생명보험사 중 빅3를 제외한 11개사는 모두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약관은 법적 준수의무 없었다고 안지킨 보험사 행태
결국 금감원은 지난 23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자살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빅3 보험사' 중 삼성·한화 두 생명보험사에 대해 대표이사의 연임을 막는 '문책경고'와 1∼3개월간 일부 영업정지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교보생명의 경우 "미지급건 모두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막판에 입장을 바꿔 임원직 연임이 가능한 '주의적 경고'로 징계수위가 경감됐다.
그 배경에는 오너인 신창재 회장이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데, 금감원 제재심의위에서 문책성 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으면 연임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두 지급'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약관대로라면 수천 억원대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오너도 아닌 대표이사 연임이나 막는 것은 '생색내기 징계'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상 초유라는 일부 영업정지 처분도 대상이 재해사망보험으로 그렇지 않아도 저축성보험으로 수익성이 떨어져 판매를 기피하는 상품이기에 오히려 보험사를 도와준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의 제재안을 다음달중 최종확정하면 이들 3사는 중징계에 따른 후속조치로 3년간 신사업에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타격을 주는 징계라는 분석도 있다. 영업정지 제재 후 향후 3년간 금융당국 승인이 필요한 신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생명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작업이 추진됐는데, 이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삼성생명은 지난해 11월 현재 삼성증권(30.1%), 삼성카드(71.9%), 삼성자산운용(98.7%) 등 주요 금융계열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한 상태다. 삼성화재가 가지고 있는 자사주(15.98%)만 추가 매입하면 삼성화재 지분도 30% 이상 확보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
하지만 이번 징계로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 보험업법상 영업정지를 받으면 3년간 보험사, 카드사, 금융지주사의 새로운 최대주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지주사 전환 시 대주주 적격성 승인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삼성·한화생명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금융당국에게 중징계는 받게 됐지만 정작 재해사망보장 특약상품 가입자 대다수는 여전히 자살보험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소멸시효가 지나도 모두 주겠다고 입장을 바꾼 교보생명조차 자살보험금 미지급금 전액을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계약 건수(1858건)를 대상으로 하되 자살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는 2007년 9월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보험 계약은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자는 빼고 원금만 주겠다는 것이어서 미지급금(1134억원)의 59%인 672억 원만 지급한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금감원이 업계에 자살보험금 지급을 권고한 시점(2014년 9월 5일)부터 소멸시효 2년을 거슬러 계산한 2012년 9월 6일 이후 청구된 미지급액 약 400억 원만 주겠다는 입장이다. 전체 미지급액(1608억 원)의 24.9%다.
한화생명도 미지급 보험금 1050억 원 중 160억원(15.2%)에만 지급 의사를 밝혔다. 보험사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는 약관이 법적으로 준수할 의무가 없었을 때 벌어진 일이라는 이유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는" 꼼수로 삼성생명은 거의 1000억 원을 안주고 버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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