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예상대로였다. 지난 1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 심사)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프레시안>과 만났었다. 그 자리에서 김 교수는 "이번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었다. 전망의 근거 역시 정확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한 건 두 차례다. 지난달 16일 청구했던 첫 번째 영장은, 지난달 19일 새벽 기각됐다. 하지만 지난 14일 청구된 두 번째 영장은, 17일 새벽 발부됐다.
한 번 기각됐던 이재용 구속 영장, 두 번째엔 뭐가 달랐나
한 달에 못 미치는 기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첫 번째 영장에선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관련 논란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기존 주주들에게 불리했다. 2015년 6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 대목을 공격하면서, 합병 계획이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지지한 덕분에 합병이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 의혹이 있다.
그리고 삼성은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다.
문제는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의 지원 사이를 논리적으로 잇기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삼성이 정 씨를 지원할 준비를 한 건, 2014년 가을이다. 반면 엘리엇의 공격 때문에 삼성물산 합병이 위기를 맞은 시기, 즉 합병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해진 시기는 2015년 6월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달 첫 번째 영장 청구 당시엔, 이 대목에서 갸우뚱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김상조 교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삼성이 정말 원했던 게 무엇이었나?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된 이후, 특검팀은 전략을 바꿨다. 삼성이 정 씨에게 막대한 지원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박 대통령의 요구가 발단이 되긴 했으나, 삼성이 나름의 전략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선 정황도 뚜렷하다. 한화그룹이 담당하던 대한승마협회 회장 사를 삼성이 맡으려고 움직였던 점이 그렇다. 정 씨를 지원한 대가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초점이 맞춰진다. '삼성이 기대한 대가'는 무엇이었나. '엘리엇의 공격'도 있기 전인 2014년 가을, 삼성 미래전략실의 숙제는 무엇이었나. 특검은 이 대목을 캤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게 2014년 5월이다. 한참 동안 멈춰 있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다시 진행해야 했다. 목표는 두 가지다. 지주회사 체제 완성, 그리고 총수 일가의 안정적인 지주회사 지분 확보.
지주회사 설립과 안정적인 지분 확보, 양립 불가능한 목표
문제는 이런 두 가지 목표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삼성그룹 간판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시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삼성의 힘이 세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주식 가격이 뛰면서, 지분 비율을 늘리는 비용 역시 함께 올랐다. 삼성 출자 구조를 둘러싼 온갖 논란은 결국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장악에 드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지주회사 전환 역시 이런 목표의 하위 범주에 있다.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세우되, 정당한 거래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니까 온갖 편법을 동원해야 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향후 설립될 지주회사에서 이 부회장이 안정적인 지분을 가질 수 없다. 물론, 이런 경우가 꼭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네이버의 경우, 창업자 지분은 미미하지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다른 주주들이 창업자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도 그럴까. 총수 일가와 무관한 주주들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행사를 지지할까. 이런 질문에 대해 삼성 수뇌부조차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른바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의 핵심이다.
지배구조 문제 겨냥하자 단서가 술술
특검이 이 대목을 겨냥하자 단서가 술술 나왔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 39권 곳곳에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대한 삼성 수뇌부의 고민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세 차례 독대에서 오간 대화 역시 이런 고민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매각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청와대로부터 압력을 받은 정황 역시 새로 조명됐다. 3년 연속 적자 기업이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순조로운 상장을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을 추진했던 배경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혐의는 확대되고, 논리는 견고해져
특검은 이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두 번째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두 가지 효과가 생겼다. 하나는 논리 체계가 확 짜인 점이다. 안 전 수석의 수첩 기록,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 공정거래위원회 및 금융위원회의 움직임 등이 '이재용 부회장이 안정적인 지분을 갖는 삼성 지주회사 설립'이라는 목표에 부합했다.
두 번째는 삼성의 범죄 혐의 규모가 더 확대된 것이다. 첫 번째 영장 청구 때는 없었던 '재산 국외 도피',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가 추가됐다.
그렇다면 법원 역시 영장을 기각할 수 없다. 죄의 규모는 더 커졌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더 탄탄해졌기 때문이다.
이건희 쓰러진 뒤, 속도 낸 승계 작업…곳곳에서 '무리수'
소수의 수사 인력으로 구성된 특검팀이 채 한 달도 안 된 기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삼성은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면서 너무 많은 무리수를 뒀다. '관리의 삼성'이라지만, 곳곳에 흔적이 남는 걸 막기는 힘들었다.
특검이 겨냥을 제대로 하고 찌르는 순간, 단서가 쏟아졌다. 법원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근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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