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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인생’ 보안사 끌려가 고문에 만신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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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인생’ 보안사 끌려가 고문에 만신창이

[홍춘봉의 광부아리랑] ㉖27년간 ‘광부간첩’ 올가미 쓴 이병규씨

27년간 ‘광부간첩’ 올가미 쓴 이병규씨

이병규씨가 만취상태에서 철길에 눕자, 지나온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어느새 기차궤도를 울리는 열차의 바퀴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죽음의 문턱에 있던 이씨는 궤도소리에 문득 어린 3남매 생각이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 내가 죽어 가족들까지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되고, 적어도 나 때문에 고생해온 가족들의 생계걱정은 면하도록 해주어야지!”

▲광부간첩으로 몰렸던 이병규씨가 보안사 수사관에게 고문당하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홍춘봉)

이러한 생각이 미치자 차라리 사고가 빈발한다는 탄광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광에서 일하다 죽으면 보상금이 나온다는데, 보상금으로라도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이씨의 눈가는 어느새 붉어졌고, 하염없이 남몰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씨는 1979년 9월 생전 처음으로 탄광촌 황지를 찾아서 왔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 취업한 이씨는 마지막 직장이라 선택하고 찾아왔지만 또다시 경찰의 보안감찰이 이어진다면 막장에서도 쫓겨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이씨는 과도를 가슴에 품고 장성광업소를 관할하는 광업소 근처의 태백경찰서 보안과로 찾아갔다.

보안과 직원이 보는 앞에서 이씨는 과도를 깨낸 뒤 “나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선을 탔다가 피랍되어 북한에서 6개월간 강제로 살다가 귀환했다. 그런데 경찰의 보안감찰 때문에 숱하게 직장에서 쫓겨나 탄광 막장까지 왔다. 여기서도 당신들이 광업소에 찾아와 북한전력을 말하면 나는 경찰서 마당에서 당신들을 원망하며 이 칼로 할복하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분명 큰일을 낼 사람으로 판단한 경찰간부는 “반드시 당신의 뜻대로 하겠다”며 “칼을 거두고 직장에 충실히 다녀 달라”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광부인생을 당차게 시작하였다.

누구보다 근면성실하게 근무한 결과, 철암 변두리(피내골)에 조그마한 구멍가게(근호상회)를 마련하였고, 조금씩 저축도 해나갔다.

또 동료들이 억울하게 징계를 당하면 재심청구서나 진정서를 써주는 등 동료들로 부터 신망을 얻었고,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해 노동운동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한눈 팔지 않고 오직 막장과 집만을 오가며 일상생활에 충실하였다.

그러다가 1985년 3월 2일 장성광업소 노조지부장 선거문제가 발단이 된 이른바 ‘장성사태’가 발발했다.

당시 6000여 명의 광부와 부녀자들이 지부장 직선제 선거를 갑자기 간선제로 바꾸는데 불만을 품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했다. 이 때문에 장성광업소가 사상 최초로 정상 조업을 하지 못하고 광업소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장성사태가 일어나자 이씨는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어 시위현장에는 절대로 얼씬도 하지 않았고, 방안에 요강까지 들여다 놓고 두문불출 하며 보낸 사실을 기록했다. 당시 광업소에는 결근계를 제출한 상태였다.

장성사태가 마무리 된 뒤 일상적인 당시의 생활사실을 기록할 즈음, 이씨는 강릉보안대에 불법 연행된 지도 1주일이 지났다.

수사관들은 4시간씩 교대로 지하 취조실을 드나들며 이병규씨에게 한숨도 자지 못하게 하면서 이씨가 태어나서 1985년 5월 보안사에 강제연행 될 때까지의 평생 이력을 작성하게 하였다.

보안사에서 평생의 ‘이력서’ 작성이 끝나자 수사관들은 지난 1969년 11월 3일 인천항에 귀환 후 정부합동신문반에서 진술했던 내용을 100% 복사해 이씨가 그 내용을 실행한 것처럼 만들고 있었다.

“당신은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내려와 지난 15년 동안 간첩활동을 펼쳤지?”

“광부로 위장 취업해 장성사태를 배후 조종했지?”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

이씨가 간첩행위 자체를 전면 부인하자 수사관은 바위처럼 큰 주먹으로 이씨의 안면 관자놀이를 몇 차례 때려 이씨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 새끼, 아직도 맛을 덜 봐서 그런가본데, 엎드려 뻗쳐!”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수갱. ⓒ프레시안(홍춘봉)

군용 곡괭이자루를 든 수사관은 지하 취조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이씨의 엉덩이를 향해 곡괭이 자루로 땅을 내려찍듯이 수십 대를 내려 갈겼다.

살이 찢기고 터지다 못해 짓이겨지는 고통과 아픔이 계속되다가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질 정도가 되자 ‘몽둥이 타작’이 멈췄는데 이미 이씨의 엉덩이는 온통 살이 터지고 피가 흥건하게 고인 상태였다.

1주일동안 육체와 정신이 온통 찢겨나간 이씨를 향해 수사관의 무지막지한 협박이 이어졌다.

“이 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본데 너 하나 죽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네놈을 죽인 뒤 군용 더블 백에 넣고 바다에 고기밥이 되도록 하면 쥐도 새도 모른다. 네 놈이 이곳에 온 사실은 우리 외에 아무도 모를 뿐 아니라 너 하나 죽여 봤자. 검찰이 우리를 수사할 수도 없다. 우리는 각하의 지시만 받기 때문에 그 외는 신경도 안 쓴다.”

겁에 잔뜩 질려 눈만 멀뚱멀뚱 뜨며 눈치를 보는 이씨에게 수사관이 이번에는 다정하게 말했다.

“순순히 자백하면 서로 편하다. 실컺 얻어터지고 고문당해 병신이 되기 전에 불어라. 북한에서 지령 받은 대로 1970년 5월 중순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고향 초등학교에 무인포스트로 약정한 느티나무를 확인했지?”

“또 1974년 11월 초 서울 오류동 우체국에서 구입한 엽서를 이용, 사업착수 신호를 발신할 목적으로 KBS 춘천방송국 노래의 꽃다발 프로에 곡목은 ‘봄처녀’로 하여 고향에 사는 친구 유정자를 수신자로 하여 이를 보낸 사실이 있지 않느냐?”

“북한에서 그런 사실에 대해 지령 받은 일은 있지만 이를 실천한 사실은 전혀 없다!”

“이 자식,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네. 오늘 너 죽어봐라!”


보안사 수사관은 의자에 앉아 취조를 받던 이씨의 머리채를 붙잡아 뒤로 젖히고는 타올을 이씨의 얼굴에 덮었다.

그런 다음 수사관은 고춧가루를 탄 커다란 주전자를 이씨의 얼굴에 천천히 들어 부었다.

맵디 매운 고춧가루가 섞인 물을 들이키지 않기 위해 30초 가량 호흡을 멈춘 이씨는 숨이 막혀 “휴!”하며 긴 숨을 내쉬고 다시 숨을 들이키자 고춧가루가 물과 함께 코와 입으로 들어와 기관지, 식도로 들어가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다가는 결국 혼절하고 말았다.

온 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이씨가 축 늘어지자 수사관은 이씨를 바닥에 눕혔다.

잠 안재우기 고문에 이어 무자비한 폭행과 고춧가루 고문까지 이어지자 이씨의 몸은 물 먹은 솜 이상이 되었다.

일주일 이상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에서도 이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선 이씨는 수사관의 회유와 협박을 이겨내는 초인같은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씨 역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보안사 지하 취조실에서 시간이 갈수록 이씨는 절망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수사관들이 자신에게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궁지로 옭아 메고 있다는 판단이 서자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관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이씨는 의자에서 일어나 콘크리트 벽을 향해 허리를 굽힌 채 머리를 강력하게 박았다.

“쿵!”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이씨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쓰러진 이씨의 머리에서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이것을 본 보안사 수사관이 소리쳤다.

“이 자식은 보통 악질이 아니네, 확실하게 쓴 맛을 보여주겠다.”

이번에는 이씨가 혀를 물고 자살을 실행하자 수사관이 달려들어 입에 자갈을 물렸다.

“이 독한 놈, 끝까지 불지 않는지 한 번 해보자. 누가 이기는지 붙어보자.”

다시 고춧가루를 탄 물을 이씨의 얼굴에 붓는 고문이 이어졌고, 이씨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숱하게 오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다시 강도 높은 취조가 시작됐다.

“너는 장성광업소에서 상포계(경조사에 서로 돕는 친목계)를 지하당 조직으로 만들었고, 이 조직으로 노동자들을 포섭하지 않았느냐?”

“동료들이 상포계를 가입하라는 바람에 가입했을 뿐이다. 때문에 상포계는 지하당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너는 1975년부터 너의 안방에서 수차례에 걸쳐 평양방송을 청취하는 등 공산주의 사상을 충실히 이행한 사실을 자백해라“

“라디오는 집안에 있지만 평양방송을 청취한 일도 전혀 없다”“장성광업소 대의원 김흔동과 임종철에게 선거자금을 대주고 선거운동을 도와줘 당선되도록 한 다음 이들을 포섭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증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자백했으니 너도 순순히 이를 시인해라.”

▲채탄광부. ⓒ태백석탄박물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나는 친구처럼 지내는 김흔동이 선거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선거운동을 도와준 사실 밖에 없다.”

“너는 악질적인 간첩이다 상포계를 조직하고 대의원을 포섭했을 뿐 아니라 검문소와 경찰서 및 군사시설을 수집해 북한 공작원에게 이를 넘겨온 사실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너는 상포계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이고, 장성광업소에 지하당 조직을 구축해 오지 않았느냐?”

“나는 간첩활동을 한 사실이 없고 누구에게도 북한에 다녀왔다는 말을 한 사실도 없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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