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탄광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방치, 외면되거나 역사현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정선군에 따르면 지난 1980년 10월 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정선군 사북읍 사북광업소와 지장산 사택단지를 방문한 뒤 정선군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장산 사택단지 입구에 기념비석을 세웠다.
정선군이 자연석으로 세운 기념비석에는 ‘대통령 오신 우리 마을, 1980년 10월 5일’라는 글귀가 간략하게 조각되어 있다.
기념비석 탄생배경에는 1980년 4월 당시 ‘사북사태’를 조사한다며 사북광업소 광부와 부녀자 120여 명을 불법 연행해 무지비한 고문과 폭행을 자행해 주모자로 만드는 등 신군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사건이었다.
사북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취임 1개월 만인 1980년 10월 3일 사북광업소 광부와 부녀자들을 달래기 위해 비공식으로 사북광업소와 지장산 사택단지를 방문하게 된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다년간 뒤 정부는 광업소 광부와 부녀자들을 위해 사북광업소에 대형 목욕탕과 구판장을 만들어주고 자녀 장학금 지원 확대, 비포장 지장산 사택단지 진입로 포장을 지원했다.
이후 사북광업소는 폐광되고 지장산 사택단지 일대가 국내 유일의 카지노리조트인 강원랜드가 들어섰으나 ‘대통령 다녀가신 우리 마을’ 기념비석은 정선군과 강원랜드에서 관심조차 두지 않으면서 방치되고 있다.
이원갑 사북사건동지회장은 “대통령 다녀가신 마을 기념비석은 강원랜드 탄생의 초석을 다진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한 유물”이라며 “정선군과 강원랜드에서 관심조차 없어 잊혀진 유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북사태’ 발발 1년 전인 1979년 4월 14일 정선군 신동읍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자미항에서는 탄광촌 최대의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폭발사고로 채탄을 위해 인차(광부 탑승용 광차)에 타고 있던 김달하(당시 42세)씨 등 광부 28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신동읍 일대를 뒤흔든 당시 폭발사고는 광부들이 타는 광차와 발파용 화약을 싣는 광차를 따로 싣고 입갱하는 규정을 아예 무시하는 바람에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인재로 밝혀졌다.
이후 함백광업소는 1993년 폐광된 뒤 일부유족과 인근주민들이 폭발사고가 난 4월 14일을 기려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다 지난 2014년 사고현장 일대를 추모공원으로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다.
그렇지만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대한석탄공사 친목모임에서 주도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은 묵살되고 추모공원 대신 합백광업소 기념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유족과 주민들의 반감을 사고 말았다.
주민 오경호씨는 “나는 과거 함백광업소에 다녔고 폐광이후 주민들과 매년 추모제를 지냈는데 추모공원 대신 기념공원이 들어서면서 역사적인 현장이 왜곡됐다”며 “유족들과 함께 잘못된 현장을 바로 잡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태백시 구문소동 속칭 나팔고개 인근 비석산 중턱에 만들어진 강원탄광 순직자 위령탑은 국내 1호 산업전사 위령탑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곳이다.
대한석탄협회 등에 따르면 서울대 광산과 출신의 민우식씨가 강원탄광 현장감독을 하던 1959년 2월 24일 붕락사고로 순직했다.
장래가 촉망되던 서울대 출신의 감독이 사망하자 탄광업계와 강원탄광에서 큰 충격에 빠졌고 특히 유복자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던 민 감독의 어머니는 피를 토하는 절규를 하다가 혼절했다.
이에 강원탄광은 민 감독과 모습이 똑같은 동상을 만든 뒤 ‘순직자 위령비’를 세웠고 그 어머니는 다소 위안을 삼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강원탄광은 1993년 5월 폐광할 때까지 매년 단오날 유족과 동료들이 참가한 가운데 위령제를 지냈고 폐광이후에는 강원탄광 퇴직자들이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위령제 행사도 중단되고 강원탄광 위령탑 주변의 풀과 쓰레기를 정리해 주는 발길마저 끊기면서 귀중한 역사의 유물이 방치되고 있다.
다행히 태백시가 올 초 탄광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탄광유산관리사업소’ 직제를 신설해 운영하면서 강원탄광 위령탑 유지 관리가 이뤄질 전망이다.
김강산 향토사학자는 “강원탄광 위령탑은 국내 제1호 위령탑”이라며 “탄광도시로 출범한 태백시는 산업전사위령탑과 석탄박물관을 비롯한 탄광유물을 제대로 보존 유지하면서 이를 관광문화 유산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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