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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의심하라, 정당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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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선거를 의심하라, 정당을 의심하라

[내가 알아야 민주주의다] ③

헬조선을 바꿀 수 있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같은 질문을 던진 박승옥 기적의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주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답한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대한 세뇌와 여론 조작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촛불 혁명을 통해 주권자 연대와 연합의 힘을 자각한 국민이 직접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민주주의야말로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주인을 누구로 정할 것인지에 앞서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만민공동회, 3.1운동, 4.19 혁명, 6.10항쟁 등에 이어 주권자가 국가 권력을 한 발 뒤로 물러나게 한 다섯 번째의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정치의 근본을 고민하는 박승옥 상임이사의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내가 알아야 민주주의다] ① 청와대 주인 없는 정치, 이것이 민주주의다

선거가 민주주의라고?

턱도 없는 소리다. 민주주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선거가 핵심이 아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보조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아테나이 민주주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테나이 인민들은 선거는 당연히 민주주의의 요소가 아니라는 상식을 갖고 있었다. 아테나이의 모든 공직은 임기가 1년이었다. 한 번 공직을 맡은 사람은 두 번 다시 공직을 맡을 수 없었다. 행정부를 구성했던 7백 명 가량의 행정직 가운데 6백 명 정도가 제비뽑기로 선출되었다. 시민 모두가 스스로 자신을 통치할 수 있는 주권자이기에 통치기구에 누가 들어가서 일할 것인지 뽑는 방식은 당연히 공정하고 사심과 여론조작이 개입될 수 없는 제비뽑기와 선착순이었다. 민회를 이끌었던 4백~5백 명의 시민대표 평의회 의원도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 501명, 1001명, 1501명 등으로 구성되는 시민법정의 배심재판관도 제비뽑기로 뽑았다. 아테나이에서 민주주의의 선출 방식은 당연히 제비뽑기였다.

물론 아테나이에서도 군대 지휘관이나 도시 재정 관리 등 전문 영역에 종사하는 공직자는 선거를 통해 적합한 사람을 뽑았다. 이런 공직자 선거는 아테나이에서도 부자와 인지도 높은 명망가들이 당선되는 경향이 강했다. 아테나이 시민들은 그래서 권력이 이들 부자들과 명망가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한 정책 결정은 민회에서 투표로 결정하도록 했다. 아테나이 시민들이 선거로 선출한 10명의 장군들은 주로 파견부대를 지휘했고, 전쟁이 벌어지면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들 장군도 민회의 투표로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었다.

아테나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해외 식민지가 확장되면서, 그리고 특히 델로스동맹의 공동기금을 아테나이가 관리하게 되면서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가 갈수록 늘어나게 되자 점점 더 많은 선거가 행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테나이 민주주의의 통치기구 종사자를 선출하는 기본 방식은 늘 제비뽑기였다.

아테나이 시민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행정관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법정의 감시를 받아야 했고 엄격한 책임이 뒤따랐다. 1년 임기를 마칠 때는 모든 공직자는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임기 중에도 시민은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고 직무정지를 요구할 수 있었다. 시민이면 누구나 행정관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제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재임 시 잘못이 드러나면 매우 과중한 벌금을 물어야 했고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심지어는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인민이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피치자인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인민이 교대로 통치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통치자와 피치자의 교체 원칙이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다. 그것도 소수의 교체가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모든 인민이 통치와 피치를 번갈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국민발의와 국민투표를 민주주의의 핵심 지표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민이 통치자로서 행하는 주요한 통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코 대표자나 권력자를 선출하는 것이 민주주의 통치의 핵심이 아닌 것이다. 통치를 받아 본 사람이 통치를 할 때, 통치를 해 본 사람이 피치자로 통치를 받을 때 역지사지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런 평등한 교체의 원칙을 실현하는데 제비뽑기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어느 누구도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원, 건축가, 플루트 연주가를 뽑지는 않는다고 비웃은 것은 민주 정치에 필요한 행정관들과 전문가들을 주권자와 동일하게 놓고 본, 아테나이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어이없는 교묘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에서 시민혁명과 함께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당시 강한 영향을 주었던 루소, 몽테스키외 등의 사상가도 선거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 근대국가의 탄생 초기 공화정을 만들면서 의회 구성원인 인민의 대표를 뽑을 때 제비뽑기는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고 무시되었다. 그리고 인민 대표의 선출 방식으로는 선거가 거의 아무런 논란도 없이 당연하게 채택되었다. 이것은 서구 근대의 정치 혁명이란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아니라 의회정, 대의정으로의 이행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당시 국가 권력에 참여하는 새로운 의회 대표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는 다름아닌 피치자인 '인민의 동의'였다. 인민의 동의가 없는 왕정과 달리 공화정은 반드시 인민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인민의 동의에 걸맞는 인민 대표 선출 방식은 신의 의지나 우연이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선거였다. 선거는 인민이 직접 대표를 자신의 손으로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주권의 행사라는 손에 잡히는 권력 행사로 손쉽게 받아들여졌다. 선거와 투표는 이렇게 서구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초기에 공화정과 대의정을 대표하는 제도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인감 도장을 잘못 찍어 패가망신하고 집안이 풍비박산된 사례를 주위에서 흔히 접한다. 그래서 인감도장은 누구나 엄격히 관리하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꼼꼼히 세부 조항을 살펴본다. 만약 계약서에 불리한 조항이 있으면 수정하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성한다.

선거에서 대표자에게 표를 찍는 행위는 주권의 위임 양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주권의 위임 양도 계약서란 인신매매 계약서와 동일한 성격의 주권매매 계약서이다. 신체포기 각서와 똑같은 주권 포기 각서와 하등 차이가 없다.

주권은 공동체 사회생활의 핵심이자 삶의 근거이다. 주권이란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 당연한 권리로 획득된 제2의 생명이자 인민의 영혼과 육체로서 분리 불가능한 것이다. 이같은 금쪽같은 주권을 양도하는 노예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 다름아닌 한국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의원 선거일의 투표인 것이다.

정당이 민주주의라고?

▲ 박승옥 저, 내가 알아야 민주주의다 ⓒ한티재
정당은 대의제와 함께 나온 대의제의 쌍둥이다. 영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토리와 휘그 양 정당은 당시 권력에 참여하고 있던 지주계급과 귀족, 극소수 부유층 가운데 제임스 2세의 즉위를 놓고 찬반 양 진영으로 갈린 것이 기원이었다. 정당은 처음부터 최고 권력자를 세우기 위한 권력 획득 투쟁의 정치조직이었다. 결코 주권자의 정치, 주권 통치를 추구한 조직이 아니었다.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가 권력을 장악한 대의정 체제가 발달하면서 영국에서는 지구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신흥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을 기반으로 각각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보수-진보의 양대 정당체제가 정립되었다. 정당은 자신들의 계급 이해관계를 대표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자 의회 권력을 비롯한 국가 권력 장악이 최고의 목표인 정치조직이었다. 인민이 직접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현대 정당을 설명하면 아마도 그 즉시 공동체와 국가를 분열로 이끄는 참주정의 음모 조직으로 단죄했을 것이다.

정당은 선거 조직이다. 계급 정당이건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함께 등장한 국민정당이건 정당은 오직 선거를 위한 정당이다. 가뭄 때는 마치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비가 오면 갑자기 새파랗게 살아나는 바위손처럼 선거가 없는 평소에는 당원의 정치활동이란 게 있는지조차 희미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당원들을 동원하는 온갖 모임으로 되살아나는 한국의 정당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고, 의회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정당을 조직해 의회 권력에 참여한 서구 국가들의 경우에는 정당의 영향력이 강하고 정당의 상설 기능이 약간이라도 존재한다. 반면에 대통령제의 미국 정당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직 선거 때만 기능하는 선거 전문 정당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정당은 명백히 유력한 사람 중심으로, 유망한 대통령 후보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철새 정당에 가깝다.

오늘날 특정한 주의주장이나 정책 중심의 정당은 녹색당이나 일부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을 빼고는 현실에서는 거의 없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보수 정당도 그 이름과 지지기반의 차이만 약간 존재할 뿐 이제는 주의주장이나 정강정책이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표를 긁어모을 만한 공약과 정책을 서로 베끼다보니 이 당이 저 당같고 저 당이 이 당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당은 반드시 과두제화 한다. 전위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간부정당이건 대중정당이건 뭐건, 민주주의를 말하고 인민의 정치 참여를 온갖 미사여구와 번지르르한 상투어로 늘어놓아도 정당은 반드시 선출된 대표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엘리트 귀족정치화 된다. 의회주권론이란 말 자체가 인민주권론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정당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대의제가 진정한 인민주권의 민주주의가 아니듯 정당 또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당을 사회를 대표해서 국가를 견제하는 민주정치의 도구로 보건 민의조작과 유권자 조종을 통해 소수 지배층의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득표 조직으로 보건 민주주의의 기만이긴 마찬가지다.

정당은 참주정의 비옥한 근거지이다.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당을 기반으로 순식간에 총통이 되었다. 무솔리니도 그랬고 박정희도 그랬다. 레닌도 러시아사회민주당을 근거로 일당독재의 사회주의 국가 독재자가 되었다. 인민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김일성도 조선노동당을 기반으로 곧바로 독재자로 변신했고, 곧 이어 김씨 왕조 국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 정치가의 강력한 지도력이나 참주, 독재자, 주권의 대리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권을 직접 행사하고 나라를 통치하는 그런 민주주의 공화국의 나라, 자유인들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원할 뿐이다.

정당의 역사는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의지와 포부를 밝힌 대표자들이 국가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인민을 속인 사기와 기만의 역사였다. 대표자들은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결국 그 자신이 권력자 기득권층이 되어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앞장서 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70년 동안 숱하게 그런 대표자들에게 속을 만큼 속아 왔다. 사실 이제 한국의 유권자 치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때가 되면 선거가 있고 대표자를 뽑으라니까 조금 덜 나쁜 놈으로 뽑는 차악의 선택이 그나마 좀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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