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위험·안전 문제가 있다. 석면의 위험성이다. 여기서 이맘때란 겨울방학을 말한다. 겨울방학 때 초·중·고등학교에서 석면 해체·제거 공사가 왕성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방학은 여름에도 있고, 그때도 당연히 석면 안전 문제에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 겨울 방학 때 석면 해체·제거 공사에 들어간 학교는 모두 46곳이다. 학교에는 주로 천장과 벽재, 화장실 칸막이 등에 석면이 사용됐다. 학교에서는 석면 자재 사용 건물 가운데 상태가 나쁜 곳을 우선해 5~6년 전부터 꾸준히 철거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학기 중에는 석면 해체·제거 공사 때 생길 수 있는 석면 비산 위험성 때문에 주로 방학을 이용해 공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 이외 지역까지 보태면 이번 겨울방학 때 석면을 철거하는 학교는 수백 곳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전국 곳곳 적지 않은 곳에서 인체 발암 물질인 '침묵의 살인자' 석면 해체·제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침묵의 살인자, 석면 해체·제거 때 가장 위험할 수 있어
우리가 학교 석면 해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석면은 해체·제거 때 가장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철거가 이루어지면 인근 주민과 학생·교사 등의 석면 노출 위험성이 거의 없지만 그런 완벽한 철거가 이루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주민과 학부모들의 관심과 감시가 필요한 것이다.
석면 해체·제거 공사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서너 달 걸린다. 서울 장안초등학교는 12월에 공사에 들어가 이미 철거가 끝났다. 대부분의 학교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송파가락고의 경우 지난 12월 30일 공사에 들어가 방학이 끝난 뒤인 3월 29일까지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방학이 끝난 뒤 수업 중 석면 해체·제거를 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사실상 금기시된 일이다. 석면 해체·제거 공사를 하면서 함부로 하거나 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공사 때 나온 석면 먼지가 날려 주변을 오염시키면 학생 등이 곧바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흉막·복막암 등 악성중피종과 폐암, 석면폐증, 미만성 흉막비후와 같은 치명적 질환을 일으키는 석면섬유는 일반세균보다 크기가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몸에 들어와도 오랜 기간 동안 아무런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나 생활공간에서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노출됐는지를 잘 알 수 없다. 10~50년 뒤에야 암 따위를 일으키기에 '침묵의 살인자', '조용한 시한폭탄'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다.
학교 석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또 다른 까닭은 피해 대상이 어린이나 청소년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어른에 견줘 질병에 더 취약하다. 어릴 때 석면에 노출될수록 나중에 성인이 돼 석면 질환이 발병할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미국, 1980년대 중반부터 학교석면 문제에 깊은 관심 쏟아
우리 사회가 학교 석면에 관심을 가진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학교석면 문제에 관심을 지니고 특단의 대책을 세워 석면 문제를 해결해왔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 석면, 특히 학교석면 문제로 사회가 들끓었다. 공공 건물, 그 가운데 화재가 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학교에는 석면자재가 다량으로 쓰였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석면의 위험성을 미처 알지 못했던 1940~50년대 학교 건물을 지으면서 방화 자재로 사용한 석면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낡아 실내 석면 먼지 비산 문제가 대두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석면 철거가 불가피했다. 불안감을 느낀 학부모들이 시위를 벌였다.
결국 미국 사회는 세계 처음으로 1986년 석면위험긴급대응법 (AHERA, Asbestos Hazard Emergency Response Act)을 제정해 대처했다. 이 법에 따라 석면이 학교에서 해체·제거 될 동안에는 학교가 문을 닫았다. 공사가 늦어진 학교는 방학을 연장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가 석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0년쯤 됐다. 2008년부터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옛 석면 광산 주변 주민들의 집단 석면 질환 발병과 2009년 베이비파우더 석면탈크 사건 등이 벌어지면서 언론과 정부, 일반 시민들이 본격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학교 석면 해체·제거는 그동안 언론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했다. 일부 학교에서 날림으로 석면 해체·제거 공사를 하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긴 하지만 석면과 석면 질환의 특성상 누가 얼마나 석면에 노출됐는지와 석면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탓에 작은 파문만 일으키고 조기에 소멸되고 말았다.
학교 석면 안전하게 철거되는지는 깜깜이
학교 석면 제거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깜깜이다. 학교는 석면 해체·제거 공사 전과 후, 석면 철거 내용 따위를 공사 현장에 알림판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 학부모 등에게 미리 통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부모와 주민, 그리고 환경 단체의 감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국내 유일의 석면 안전 관련 NGO인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반코)는 2일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몇몇 석면해체·제거 학교에 대한 조사 활동을 벌였다.
환경NGO의 감시 활동도 중요하지만 전국 각급 학교에서 동시 다발로 벌어지는 석면 해체·제거가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 또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석면 안전 교육을 통해 이들이 자체적으로 감시 활동을 하도록 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건강과 안전, 즉 생명은 관심을 가질수록 위험이 낮아진다. 안전과 건강은 국가가 지켜주어야 할 기본권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국가에 맡겨 놓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등 우리보다 선진국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깨어 있는, 참여하는 시민들의 관심과 활동이 활발할 때 국가도 더 깨어 있고 열심히 하기 마련이다. 학교 석면 안전 문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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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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