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공신력이 있는 국제단체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2009년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195개 국가의 언론 자유 실태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14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자유'(Free) 국가로 분류되었다. 2008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표(Democracy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167개 국가 중 28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17위) 다음이다. 하지만 8.0 이하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는데, 한국의 성적은 8.01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음 해에는 아래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잇달아 발표하는 전국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바로 그 사례다.
2009년 6월 발표한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를 보면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심각한 현실이 묘사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위자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진압경찰은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시위자들, 노동조합원, 언론인들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어떤 단체인가? 국제사면위원회라고도 불리는 이 단체는 1961년 양심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창립된 이래 가장 공신력 있는 인권단체로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1977년에 노벨평화상, 1978년에 유엔인권상을 수상하였다. 이것이 바로 국제엠네스티의 보고서에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국제엠네스티의 경고를 계속 무시한다면 민주주의의 후퇴를 지적하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중도실용주의의 이상한 죽음
이명박 정부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중도실용주의를 표방하고 광범위한 지지층을 흡수했다. 전통적인 보수성향의 한나라당 지지자 뿐 아니라 중도성향, 심지어 진보성향의 유권자들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이명박 후보는 보수성향의 박근혜 후보와 달리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고 이념을 초월하여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당시 중도성향 유권자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후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한 치 앞을 가릴 수 없는 진검승부가 펼쳐졌다. 서울 시장의 '업적'을 자랑하는 이명박 후보는 당시 영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 박근혜 후보를 뛰어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 때 결정적으로 영남의 정치 판도를 뒤집는 승부수가 나왔다. 바로 '대운하' 공약이었다. 대운하 사업이 발표되자 대구와 경북의 민심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대운하 공약은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나는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가 아주 중요한 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적 보수세력이 대선 때마다 안보와 이념 이슈를 들고 나온 것과는 달리 경제와 실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한국 보수주의가 새로운 정치지형을 형성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이념논쟁으로 경쟁하기보다 (비록 현실성은 없었지만) 대운하와 같은 정책공약으로 판세를 뒤엎은 점은 주목할 만한 새로운 정치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후 중도실용주의는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지난 해 5월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는 급속하게 강경보수로 선회하고 이념논쟁을 주도했다. 이는 결국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무차별 연행과 구속, 국가인권위원회의 축소, 집시법과 정보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급기야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용산참사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선회는 매우 극적이다. 경선 당시에 보여주었던 유연하고 온건한 보수의 이미지는 1950년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유사했다면, 경선 이후 독선적이고 강경한 보수의 모습은 2000년 이후 W. 부시 대통령의 모습과 흡사하다. 왜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이명박 정부의 급격한 변화는 어쩌면 이미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경선 당시에는 중도층과 무당파를 잡기 위한 전략을 선택했다가 집권 후에는 전통적 지지층에게 호소하는 정치전략의 변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스타일과 행동이 변화한 이유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주의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의 세 가지 가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명박 정부, 무엇이 잘못 되었나?
먼저, 이명박 정부의 '이너서클'의 인적 구성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과 서울시장을 거쳤지만 사실상 한나라당과 정치권에서는 아웃사이더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사하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충성스런 심복과 직계 세력이 매우 취약하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측근 이재오 의원의 인맥에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이재오 의원이 낙선하자 이상득 의원의 독주가 시작되면서 70대 노정객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사실상 거의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했다. 그 외에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후 득세한 세력들은 모두 1970~80년대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던 사람들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체포하고 서울광장의 집회를 막는 행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권위주의 시절의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 내부에는 급격한 보수화에 제동을 걸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둘째, 이명박 정부 내부의 정치적 분파의 지나친 경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박근혜 의원 세력과 정치적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친이-친박의 대립 양상은 날로 심각해졌다. 한나당 내부의 정파가 독자세력을 형성하면서 집권세력의 기반은 두 토막이 났다. 칼 마르크스가 <브뤼메르 18일>에서 날카롭게 분석했듯이 국가는 단일한 행위자라기보다 다양한 정파의 갈등과 협력이 교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친이-친박의 갈등은 정도가 지나쳤다.
집권세력이 부딪힌 공동의 위협 속에서도 한나라당의 분파는 서로 협력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적 분열은 내부 노선의 차이라기보다 골육상쟁의 드라마가 되었다. 그러자 집권 6개월 만에 지지율이 15%대로 추락한 정부는 결국 (사실상 박근혜 의원을 지지했던)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기 위해 정치적 보수화와 이념논쟁에 뛰어든다. 박근혜 의원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서 강경보수화 전략을 선택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하반기 이후 다시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셋째, 이명박 정부의 정치 전략가들이 구상한 선거공학이다. 촛불 집회가 끝나고 강경보수로 선회한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다시 35%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자 집권 세력에서는 전통적 지지층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했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지지층은 투표율이 80%를 넘기 때문에 모든 투표에서 승리할 것이라 판단하는 듯 했다. 과연 그런가? 하지만 이러한 선거공학의 가정은 정치적으로 재앙에 가깝다고 판명되었다.
특히 2009년 4월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4.29 재보선에서 더 이상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선거공학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의 2배에 달했지만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 크게 놀랄 일은 한나라당이 아직도 그 패배의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위 세 가지 가설 중 어느 한 가지만 유력한 요인이 되었는지, 아니면 모두가 맞는 것인지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의 강경보수화는 상당히 구조적 요소와 전략적 선택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강경보수화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상당히 장기적으로 유지될 국정기조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08년 촛불집회가 끝난 후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청와대에서 회담을 한 것은 청와대의 이중적 정략에 이용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를 알아챈 민주당이 다시 청와대의 국정기조의 변경을 요구하며 강경노선으로 전환한 것은 어쩌면 야당 입장에서 보면 필연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집권세력의 강경보수화가 집권세력의 지지기반을 강화하기보다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집권당의 위기, 대통령의 위기
이명박 정부의 강경보수화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집권 이후에 아무런 계획을 갖고 있지 않는 한나라당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전 정부가 만든 것은 모조리 없애는 대신 이념 논쟁에만 매달리고 있다. 경제회복도 사회복지도 남북관계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권력투쟁에만 몰입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친이와 친박이 분열되고, 당권파와 쇄신파가 충돌하고, 구주류와 신주류가 경쟁을 해도 한나라당의 진면목은 거의 변함이 없는 듯하다.
재보선이 지난 지 한 달이 넘도록 한나라당은 아무런 쇄신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타이타닉처럼 침몰하는 한나라당의 리더십이 실종된 지 오래이다. 이렇게 집권당이 혼란 속에 빠져 있는 모습은 마치 2004년 이후 열린우리당의 모습과 비슷하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권당이 무능하면 집권세력의 미래는 없다.
이명박 정부가 분열과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철학을 실천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대표와 협력하지 않고, 야당과 시민사회와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고, 계속 의회의 지도부와 만찬과 연회를 베풀며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국회의원의 의견을 경청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사실 대통령 리더십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CEO형 리더십을 위해 현대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기 표현력이며, 현대의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소통에서 리더십이 생긴다는 뜻이다. 피터 드러커는 다른 곳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서 국민이 무엇을 들었는지 청와대가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5월 23일 갑작스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청와대와 집권세력의 무능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열기와 함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집권세력은 아무런 대국민담화도 그 어떤 새로운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국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나와도 묵묵부답이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나도 20년 전 서울대 교수였다"는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취임 초기만 해도 전봇대를 뽑듯이 모든 일에 의욕을 넘쳤던 청와대는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금 청와대와 국민 사이에는 갑옷으로 무장한 전투경찰과 서울광장을 막고 일렬로 늘어선 전경 차량만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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