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일명 '블랙리스트') 구상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은 수사 담당자들을 놀라게 할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임명 직후인 2013년 8월 21일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상적인 잣대로 좌파와 우파로 나누고 문화계를 장악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특검은 파악했다.
김 전 실장이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비서관, 박준우 전 정무수석비서관 등에게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에 사정을 서둘러야 하며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권과 뜻이 다른 예술계 인사, 단체 등을 좌파로 단정하고 이들을 제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을 반복해서 표출했다.
그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는 것은 종북세력이 의도하는 것이다. 제작자나 자금 제공자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개구리도 용서할 수 없다'(2013.9.9 회의)는 발언을 이어갔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거론하며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1월 4일 수석비서관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께서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국가 개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지녔다. 우파가 좌파 위에 떠 있는 섬의 형국이니 전투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세력과 싸워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 혼자 뛰고 있는데…'라며 각 부처의 문화예술인 지원 실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김 전 실장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 '정권이 바뀌었는데 좌파들은 잘 먹고 사는 데 비해 우파들은 배고프다, 잘 해보라'고 독려가 섞인 지시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박 전 수석과 신 전 비서관은 2014년 4월부터 약 한 달에 걸쳐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하며 야당 후보 지지 선언을 하거나 정권 반대 운동에 참여한 개인·단체를 130건 선별해 공적 지원에서 배제했으며 이것이 블랙리스트의 시초가 된 것으로 특검은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지난달 7일 최순실 게이트 진상조사 청문회에서 "뭐 블랙리스트니 뭐 좌파를 어떻게 해라 저는 그런 얘기한 일이 없다", "저희가 블랙리스트를 만든 일은 없다"고 자신의 개입을 전면 부인했다.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진실은 결국 김 전 실장이 기소된 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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