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여관에서 제공하는 북한산 술을 마시고 거나해진 가운데 일행 4명이 여관 옥상으로 올라가 고향에 두고 온 처자와 부모생각을 하며 ‘그리운 남쪽나라’를 합창했다.
강제로 북한에 피랍된 선원들은 갑자기 뒤틀어지고 있는 인생을 생각하면서 한시도 고향의 부모형제를 잊지 못하다가 술을 마시자 고향생각이 불현 듯 솟구친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가던 행인이 ‘남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보위부에 신고했다.
“동무들! 지금 정신이 어떻게 된 거야!”
“수령님의 은공으로 배부르게 먹여주고 편안하게 대접해 주는데 남조선 유행가를 부르다니 한심하오!”
“오늘부터 동무들은 매일 ‘자아 비판서’를 써서 제출하시오!”
이날부터 선원들에 대한 감시가 더욱 심해졌고 유행가를 부른 선원 4명은 일주일간 자아비판서를 써내며 매일 심한 질책을 받아야 했다.
며칠 뒤 선원 31명은 평양의 한 방직공장에 초청돼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방직공장 대강당에 마련된 ‘환영대회’는 방직공장 노동자 600여 명과 조평통 소속 간부, 당 간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 되었다.
조평통 간부는 “남조선의 굶주린 인민들이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의 품에 안긴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열렬히 박수를 치면서 환대 하였다.
이어 선원대표로 선정된 피랍 선원이 당 간부가 미리 써준 답사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못 먹고 못 사는 남조선에 살다가 북한에 와서 쌀밥과 고깃국으로 배를 실컷 불러 보았으니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은공을 절절이 느낀다.”
이에 장내는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답사가 끝나자 예쁘게 단장한 나이 어린 여공들이 꽃다발을 들고 나와서는 선원 31명 개개인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인사를 하였다.
또한 여공들의 피랍선원을 위한 무용공연에 이어 과일과 음료수로 준비한 다과회를 끝으로 성대한 환영대회는 막을 내렸고 선원들은 여관으로 돌아왔다.
환영대회는 선원들이 함흥이나 해주로 이동할 때마다 인민학교, 유치원 등에서 잇따라 개최하였으며, 마치 대단한 영웅이나 된 것처럼 혼을 빼놓는 분위기를 유도했다.
특히 조평통 소속 요원들은 수시로 선원들을 버스에 태워 북한이 자랑하는 만경대와 혁명박물관을 비롯해 김일성 종합대학, 모란봉, 평양 대극장, 모란봉 경기장, 백석리 협동농장, 평양 김일성 동상, 만수대 혁명박물관 등을 차례로 견학시켰다.
또 화천공작기계공장을 시작으로 신안전기공장, 흥남비료공장, 진남포비료공장, 평양견방직공장, 황해제철소, 기양트랙터공장, 기안저수지, 경종대 전기기관차공장, 2.8비니루공장, 평양농공업 전람회관 등 공장시설도 안내했다.
이밖에 선원들은 평양동물원과 평양체육관, 석암야영소, 소년궁전, 혜산진혁명학원, 창전인민학교, 오리목장 등의 학교와 농장 등에도 견학을 시키며 침이 마르도록 북조선 체재의 자랑을 해댔다.
6월 중순부터 피랍선원들은 대남공작지도원의 지시에 의해 오전 6시에 기상해 밤 10시에 취침할 때까지 학습과 영화관람, TV시청으로 이어지는 일과표에 따라 학습을 받았다.
조평통은 이들에게 ‘김일성 혁명 역사’,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 주체사상에 대하여’, ‘자본주의에 비한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 등 강의를 학습토록 했다.
특히 학습시간에는 북한의 공원과 광업 및 농업이 남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발전했다는 것을 찬양했다.
또 북한 사회제도의 우월성, 김일성 찬양을 들으며 이념과 체제의 극과 극을 체험해야 했다.
이들에게 김일성 전기와 김일성 선집을 시작으로 당정책, 김일성 빨치산 투쟁기, 김일성 교시, 김일성 주체사상, 노동당사, 마동회와 오증흠의 전기 및 회상기를 수도 없이 읽기를 강요했다.
사회주의 사상을 이들에게 주입시키고 김일성을 지상 최고의 혁명가로 미화시키는 작업은 영화와 연극, 텔레비전으로도 이어졌다.
물에 적신 가마니를 쓰고 벌겋게 단 용광로에 뛰어 들어가 고장 난 용광로를 수리해 책임량을 완수하는 산업전사의 황당한 이야기, 미군의 폭력으로 부상당한 기관사가 영웅적으로 피난민들을 안전한 목적지까지 수송하는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 했다.
또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찬양하는 연극을 보고 항일투쟁을 하는 애인을 찾아 가다가 일본군에게 검거되었으나 끝까지 입을 벌리지 않고 투쟁하는 처녀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가 주종이었다.
이밖에 선원들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형직 선생의 노래는 물론 남산의 푸른 소나무, 강반석 여사의 노래 등 모두 14곡에 달하는 김일성 찬양노래를 강제로 배우도록 하였다.
이어 ‘미제를 몰아내자’, ‘박정희 괴뢰정권을 타도하자’등의 삐라를 작성해서 야음을 틈타 삐라를 살포할 때는 열차 화장실 변기 아래로 살포하고 지하당 조직을 점조직으로 하되, 한 사람이 세 사람씩 하도록 교육 받았다.
북한에 납북된 이들은 자신들에게 아무 필요가 없는 교육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남한에 귀환해 부모형제를 만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지시를 무조건 충실히 따르는 길이 가장 현명한 일로 생각했다.
선원들은 이런 교육을 2개월 이상 지속한 8월 중순, 평양여관 3층 강당에서 지도원이 선원들을 한 사람씩 불러내 소감을 물었다.
“그간 학습교양을 받은 소감이 어떠냐?”
선원들은 한결같이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이 피나는 고난을 겪으시면서도 항일투쟁을 하신데 대하여 무한한 감명을 받았다. 우리도 김일성 수령님의 의도를 받들어 혁명투쟁에 앞장서겠다”고 대답하며 평소 받은 교육을 합창했다.
북한체제에 대한 학습효과가 나타났다고 판단한 당 간부들은 평양여관에서 승용차 편으로 7분 거리에 있는 다른 여관으로 선원들을 이동 시켰다.
이곳에서 조평통은 개별 수용된 선원들에게 강도 높은 학습을 계속하였다.
선원들에게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남조선 인민들이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박정희 괴뢰정권에 항거해야 한다”, “남조선 인민들이 뭉쳐 4.19와 같은 결정적 시기를 만들어 봉기를 일으키면 북조선에서 남조선을 해방 시킨다”는 등의 내용을 학습시켰다.
선원들은 새로운 학습과정이 마무리 될 때마다 당 간부가 나타나 한 사람씩 불러 “지금까지 김일성 수령님의 주체사상을 학습받은 동무는 남조선에 내려가면 어떻게 혁명투쟁을 할 것인가”하고 물었다.
모범답안을 꿰뚫은 선원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인민들을 하루빨리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앞장서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주입시켜 4.19같은 봉기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며 답변을 하였다.
기대했던 최고의 답변이 나오자 당 간부들은 안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만족해 하였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동무들. 앞으로 적극적으로 남조선 혁명투쟁에 분투하길 바란다”
하루는 선원들이 부벽루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능라도에서 배구와 테니스를 하고 오는 길에 대동강변 축구경기장에서 노동자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 일행 가운데 한 명이 축구하는 것을 보고는 축구시합 경기를 제안했다.
“북한 노동자들과 우리 축구시합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때?”
일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좋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31명의 선원 가운데 남한에서 공을 몇 번 차본 경험이 있는 11명을 선정하여 북한 노동자들과 축구시합을 펼쳤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북한노동자들의 축구실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마땅한 레저스포츠가 없는 북한에서는 시간만 나면 공을 차는 습관으로 인해 선원들은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전 후반을 통털어 9대 0으로 처참하게 패한 선원들이 잔뜩 주눅 든 채 “망신만 당했다”며 시합 전 의기양양 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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