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던 구시대의 상징,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손에 채워진 수갑은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된 김 전 실장은 22일 오후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 사무실에 출석했다. 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미결수용자로 인신 구속 상태인 김 전 실장의 자해 등을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그는 구치소에서는 수의를 입고, 이날과 같은 외출 시에는 사복을 갈아입을 수 있다.
그의 공직 인생은 박정희에서 시작해, 박근혜에서 끝났다.
5.16쿠데타가 발생하기 불과 7개월가량 전인 1960년 10월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쿠데타 정권과 함께 화려한 공직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2017년 1월, 수갑을 차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그는 낡은 지역주의를 이용한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그리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갔다.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그는 단죄받지 않고, 1996년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한나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위원이 돼 역사의 물결을 돌리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영화였다. 최근 개봉한 <더킹>에서 정우성 씨가 열연한 한강식 부장검사가 내뱉은 대사를 떠올릴 수 있다. 후배 검사 앞에서 "내가 곧 역사야!"라며 눈을 뒤집고 호통치는 그 모습이다. 한강식 부장은 김기춘 씨를 떠올리게 한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김기춘의 시계는 달랐다. 56년 전부터 지금까지, 부녀 대통령을 모시면서 기득권 체제와 독재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그 비열하고 낡은 방식을 여전히 사용했다. 이미 무뎌진 칼을 여전히 휘둘렀다.
권력의 부스러기를 한평생 취하고 살았던 그가, 이제 수갑을 차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해, 박근혜 정권까지, 56년간 대한민국 현대사를 왜곡시켰던 문제적 인간의 처참한 말로다. 수갑 찬 김기춘, 이 사진은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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