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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과 조의연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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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과 조의연을 위한 변명

[사회 책임 혁명] 법치주의는 과연 누구에게 유리한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판사가 갑자기 탑클래스 연예인급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을 막은 조 판사의 행위를 두고 극심하게 갈리는 찬반양론이 난무하고 있다. 조 판사의 파면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시작됐는가 하면 법원에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등 그의 판단에 대한 규탄이 이어진다. 반면 "과도한 사법부 흔들기는 안 된다"며 조 판사를 옹호하는 세력도 있다.

구속 안 돼도 이재용이 '범죄 혐의자'임은 바뀌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모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예컨대 "조의연 부장판사가 삼성 장학금을 받았다거나 (있지도 않은) 아들이 삼성에 취업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퍼드리며, 조 판사 개인을 공격해서는 안 되지만, 그의 판단에 관한 문제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반대로 조 판사의 판단에 대한 문제 제기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것 또한 얼마든지 용인되어야 한다.

조 판사의 판단은 아마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부회장 또한 피의자로서 법이 정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부회장의 범죄 사실이 명백해 보이지만, 법치국가에서 법원의 판결을 받기 전까지 이 부회장은 일단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 인신의 구속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원칙상 그 특별한 사정이 혐의의 경중이나 혐의자(嫌疑者)의 혐오(嫌惡) 수준을 말하지 않는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지 않았다 하여도 그가 범죄 혐의자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는 그의 범죄 행각을 추후 법원이 사실로 받아들여 그때 인신의 구속을 포함하여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되리라 기대한다.(어쩌면 이번 구속영장의 기각처럼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그게 지금의 논의사항은 아니다.)

혐의가 법원에 의해 범죄로 확정되기 전에, 예외적으로 인신의 자유를 제한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사유는 주지하듯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이지, 앞서 강조하였듯 혐의나 혐의자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

이 부회장의 주거가 확실하고 그가 (그 천문학적 재산을 두고) 도주할 우려가 없다고 할 때 구속영장을 발부하느냐 마느냐의 쟁점은 증거인멸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을 조 판사는 낮게 보았고 아마도 이번에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했으리라 믿는다. 반대로 구속되나 안 되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모두 높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인신 구속의 효과가 여러모로 일반인과 현저하게 다른 이 같은 상황에서 법관의 양심이란 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을지 흥미롭다.

어쩌면 국내 및 국제 경제에서 삼성의 위상 등 '애국심'이 개입하였을 개연성 또한 배제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때 '애국심'이 법관의 양심에 포함되는지가 불분명하기에 이런 논의를 계속할 필요는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의심을 품을 순 있지만 조 판사가 법관의 양심을 저버린 명백한 근거가 없는 한, 서울중앙지법이 20일 입장 자료를 내며 우려하였듯, 조 판사의 판단이 법치주의를 훼손한 게 아니라 그의 판단을 비이성적 방법으로 공격하는 것을 법치주의의 훼손으로 간주함이 타당하다.

▲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연합뉴스

법치는 기득권에 유리, 법치주의를 의심해야 한다

자, 여기까지 그다지 틀린 얘기는 없어 보이지만, 어떤지 공허한 느낌이 든다. 다소 불쾌하기까지 하다. 왜일까? 우리는 어떠한 의심도 없이 법치주의를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현대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시스템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이 법치주의를 의심해야만 공허와 불쾌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관의 양심을 운위할 때 그 양심은 시대정신이나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설명되는 민중 혹은 전체 시민의 이익과 일치해야만 한다. 그러나 법은 불가불 실정법이고, 실정법이 기득권과 가진 자의 이익을 구조적으로 옹호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체로 법관의 양심은 기득권과 가진 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체계에서 답을 구하도록 육성되어 있다. 자크 랑시에르 등 당대의 많은 석학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듯이 민주주의의 적, 즉 민중과 시민의 적은 법치주의이다.

법치주의와 금권적 과두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구조이다. 금권의 주구인 의회권력과 그 의회권력이 만든 법을 양심의 근거로 삼는 또 다른 금권의 주구인 사법부가 우리 법치주의를 지탱한다. 따라서 많은 국회의원과 많은 법관이 양심과 애국심에 입각해 하는 행위가 구조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훼손한다. 물론 법에 의한 통치가 시행되기 전에는 법치주의가 소망스러운 가치였지만 법치주의가 시행된 이후의 법치주의는 제대로 된 가치를 구현하는 법치주의여야만 한다. '법치주의의 훼손'이란 말은 그러므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법치주의는 훼손되어야 마땅하고, 훼손되어 마땅하지 않은 법치주의만이 존중받을 수 있으며, 그런 법치주의에서 기능하는 법관의 양심만이 존경의 대상이 된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 부회장의 불구속을 결정한 조 판사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피의자에게 이 부회장과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을까?' 하는 점이다. 금권이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는 법원이라고 한다면, 금권의 화신인 이재용 또한 인간이기에 '법관의 양심'에 의거해 인신의 자유를 가능한 최대로 보호해야 한다. 또한 불구속 재판을 거쳐 이 부회장이 비슷한 죄를 지은 범죄자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면 '법관의 양심'에 작은 기대를 걸어도 좋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살아내는 법치주의에서 목격할 수 있는 건 대체로 '법관의 양심'이 아니라 '금권의 양심'이란 점에서 우리는 법치주의의 더 많은 훼손을 통해 법치주의를 구해내야 하는 자가당착에 처해 있다. 개별 법관의 양심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 법치주의의 정향이 문제다. 다행히 우리는 전환의 작은 계기를 구축해냈다. 박근혜 한 명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가게 하려고 그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지 않았음을 더 부언할 까닭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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