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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조선일보>의 '대단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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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조선일보>의 '대단한 발견'

[김종배의 it] 계획된 '죽창'? '죽창 비율' 3%의 의미는?

'조선일보'가 대단한 걸 발견했나 보다. 1면에 올렸다. '계획된 죽창'이란 제목의 기사다.

"지난 16일 대전 도심에서 벌어진 불법폭력 시위 현장에서 압수한 '죽봉' 가운데 일부는 사전에 끝을 뾰족하게 깎은 '죽창'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대전지방경찰청은 19일 시위 현장에서 압수한 죽봉 620여개 가운데 20여개는 애초부터 대나무 끝을 낫 등으로 날카롭게 깎은 '죽창'이었다는 사실을 확인, '죽창'을 만들고 배포한 사람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고 했다.

하긴 대단한 발견이긴 하다.

이 보도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경찰과 민주노총의 '죽봉-죽창' 논란은 맴맴 돌았다. 대전경찰청은 "대나무를 바닥에 내리쳐 죽창으로 만들었다"고 했고, 민주노총은 죽봉이 경찰 방패에 부딪혀 끝이 갈라졌을 뿐이라고 맞섰다. 논란은 뜨거웠지만 논란의 양 당사자 모두 '우발성' 범위 안에서 제한전을 펴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조선일보'가 '계획된 죽창'을 확인 보도했으니 판을 정리할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 조선일보 20일자 기사ⓒ조선일보
헌데 왜일까? 우습다. 실소를 거둘 수가 없다.

당장 이런 의문이 싹튼다. 민주노총은 왜 '계획'을 620분의 20, 즉 3%로 제한했을까? 죽창 들고 폭력시위 벌일 요량이었다면 왜 감질나게 죽창 비율을 3%로 제한했을까? 치고 빠지려고 그랬을까? 600여개의 죽봉 사이에 드문드문 죽창을 끼워넣어 '흉기'의 존재를 감추려 했던 걸까?

자답하지는 말자. 이렇게 자문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뿐더러 이보다 더 큰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단 한 번이라도 대나무를 베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대나무는 직각으로 잘리지 않는다. 낫이나 칼로 대나무를 직각으로 자르려고 하면 갈라진다. 결을 따라 대나무가 '쩍' 갈라진다. 그래서 사선으로 내리친다. 낫이나 칼로 단번에 비스듬히 내리쳐 자른다. 대나무를 자르는 연장이 낫이나 칼일 경우 대나무는 잘리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창'이 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있긴 하다. 쇠톱으로 자르면 된다. 날이 가는 쇠톱으로 자르면 끝이 평평해지고, 그것으로 대나무 마디 부분을 자르면 대나무 통이 된다. 식당에서 흔히 보는 대나무 밥통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많이 쓰진 않는다. 특별 용도가 아닌 한 또는 특별 주문이 없는 한 농부들은 대나무를 이렇게 자르지 않는다. 비싼 쌀밥 먹고 쇠톱질에 헛심 쓰느니 낫으로 단 한 번에 베어버린다.

자, 이렇게 사실을 확인했으니 물어보자. 대전에 모인 노동자들은 죽창을 어떻게 구했을까? 그곳에 모인 노동자 전원이 집 뒷산에서 대나무를 베어왔을까?

우습다. 이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벌어지지도 않았다. 화물연대의 박상현 법규부장이 밝힌 바 있다. 대나무를 '구입'했다고 했다. "만장으로 사용한 일부 대나무는 구입 당시부터 창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죽봉 600여개가 납품되는 과정에서 죽창 20여개가 공교롭게도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게 현실적이다. 박상현 부장의 주장에 기대서 하는 말만이 아니다. 그렇게 보지 않고서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600여개의 죽봉을 '특별' 주문하면서 20여개의 죽창을 '별도' 주문했다는 게 상거래 통례에 비춰볼 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구입' 단계에서 '일부' 죽창이 섞여 들어간 걸 걸러내지 못한 '과실'을 부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전에 '주문' 단계에서 죽창이 아니라 죽봉을 원했던 발주자의 진심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가능성도 살펴야 할지 모른다. 박상현 부장의 말과는 달리 구입 단계에서 죽창이 섞여 들어간 게 아니라 어떤 노동자(들)가 시위 현장에서 일부러 죽봉을 죽창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 가능성을 현실영역으로 끌어내려면 입증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죽창 사진 뿐 아니라 죽봉을 죽창으로 만든 연장, 즉 낫이나 칼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덧없다. 논리상으로는 필요한 절차이지만 실제론 별로 필요가 없다. 이 가능성을 상정하는 순간 다른 추정이 성립된다. 애초에 현장에는 죽봉 밖에 없었다는 추정, 애초에 주최측은 죽창을 동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추정이 성립된다.


'폭력' 양태의 정당성은 별개로 하고 '폭력'의 성질과 경위에 대해 묻고 또 묻는 이유가 있다. 죽창이 아니어도 사정은 매한가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 막대기를 쓰면 각목을 든 게 된다. 게다가 우연히도 몇 개의 나무 막대기에 뽑다가 만 못이 박혀있으면 흉기가 되고…. 파이프도 그렇다. 재질에 금속물질이 조금이라도 섞여있으면 쇠파이프가 된다. 그냥 알루미늄 파이프라 해도 부서지는 순간 끝이 뾰족한 알루미늄창이 되고….

죽창이 아니더라도 '폭력의 의도성'을 부각시킬 거리는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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