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19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에 출연해 '독특한' 화법 이면에 반대 여론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 한국인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에 대한 불안감 등이 내재돼 있다고 풀이했다.
"외국 사람의 '눈'에 전전긍긍말고 자부심 가져 보라"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화물연대 조합원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 가운데서 불거진 '죽창, 죽봉' 논란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마저 공식적으로 '죽봉'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죽창'이라고 단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황상민 교수는 "당신이 알고 있는 용어가 죽창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면서 "기본적으로는 대통령이 정부에 대해 반대되는 의사를 표현하거나 일련의 자기이익을 표현하는 집단 자체의 존재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감을 표현하는 의미에서 죽창이라는 단어를 아주 쉽게 연상하고 사용하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했다.
▲ 이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무회의에 앞서 보고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
특히 황 교수는 "국민들의 의사표현에 대해 '외국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 부끄럽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 하고 있다"며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우리 사회의 구시대적인 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잘 드러낸 심리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외국 언론', '외국 정상'들에 비친 한국 사회는 이 대통령의 각종 연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황 교수는 "그 때의 심리상태는 남의 눈을 통해 자기를 볼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이고 식민지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황 교수는 "자국의 국민들이 자랑스럽지 못한 나라라면 외국에 어떻게 보여지든 그것도 사실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일차적으로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보는 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최근 이 대통령이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를 금융회사로 바꿀 것을 주문한 대목에 대해서도 황 교수는 "당연히 회사생활을 오래 했으니까 회사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게 맞다"며 "아마 대통령은 기관보다는 회사가 편한 분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황 교수는 "그런데 회사라는 것은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조직이고, 기관이라는 것은 공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고 공공적인 의미"라면서 "결국 공공적인 개념보다는 사적 이익의 극대화에 대한 사고가 더 우선하는 분은 아닐까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현안에 대한 이 대통령의 최근 발언>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 글로벌 시대에 국가브랜드를 높이기 위해서 이런 후진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떨어뜨리는 3가지 요소는 폭력시위, 노사분쟁, 북핵문제로 조사된 바 있는데 우리 사회에 여전히 과격폭력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금융이 정부 소유였을 때 금융기관이지, 금융기관이라는 말이 적합한 용어인가.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는 관치 금융시대의 느낌이 난다. 금융회사 등으로 용어를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라." (5월19일 국무회의) "지금까지 우리는 강에 폐수를 버리고 생산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4대강 정비사업으로) 4대강 모두 썩은 물을 맑게 만들고, 마른 강을 물로 채워야 한다…(중략)…온 세계는 대한민국의 4대강 살리기에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는 민심이 함께 흐른다." (5월6일 아라뱃길 사업현장 보고대회) |
청와대와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4대강 살리기'에 대한 이 대통령의 꾸준한 언급도 도마에 올랐다.
황 교수는 "이 대통령이 사용하는 어법에는 항상 당신의 숨은 저의, 대개는 이런 것을 언어학적으로 프레임을 갖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당신의 뜻이 차라리 어떻다라고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갑론을박을 통해 중지를 모아가는 방식이 민주사회에 적절한 것"이라면서 "본인의 의도를 밑바탕에 깔고 있거나 감추면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나는 다른 미사여구를 동원하면서 어떤 용어를 선정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건 국민들로 하여금 '아, 저 분은 개방적이다, 저 분과 소통이 된다'는 것을 느끼기 힘들게 만드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MB의 '회장님' 어법, 이미 굳어졌다"
이 대통령의 화법이 참모진이나 정부 조직의 '과잉충성'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대표적으로는 '용산참사'에 대한 당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무리한 진압작전이 꼽힌다. 청와대 모 행정관의 '개인적인 문제'로 봉합된 '이메일 홍보지침 파문'도 청와대 내부에선 '지나친 충성심이 낳은 사고'로 받아들이는 기류가 강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나 그 언어에 비춰지는 사고의 프레임이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황 교수는 "대통령의 틀에 갇힐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가진 프레임을 해석하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 깔린 뜻을 끊임없이 해석하려고 하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과도한 행위, 실수, 임시변통, 전시행정적 쇼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고 경고했다.
"차리라 이거면 이거다, 하고 분명한 어투를 갖고 얘기해주시면 좋겠다"는 사회자의 지적을 받아 황 교수는 "하지만 그렇게 되기 힘들다"라면서 "대통령은 상당히 카리스마있는 우두머리 밑에서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해 왔는데, 그런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항상 소위 '회장님'의 말씀을 다시 해석해야 하고, 그 이면에 딸린 뜻을 잘 캐치하는 자만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당신이 가장 잘 하는 행태로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에, 당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게 될 때는 당신도 모르게 그런 화법을 쓰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심기'를 읽어온 청장년기의 경험이 그대로 굳어져 대통령직 수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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