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의원이 직접 밝힌 내용이다. 자신이 원내대표 경선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된 데 발끈해 스스로 공개한 일화다. "출마하고 안 하고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며 불개입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주장하면서 내놓은 비하인드 스토리다.
잘 읽자. 이상득 의원의 말에는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가 숨겨져 있다. '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 필적할 만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다.
"출마하니까 한 표 부탁한다"는 말은 어색하지 않다. 원내대표 경선이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이니까 그렇게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거운동이다. 하지만 아니다. 황우여-최경환 의원은 그 말을 한 게 아니다. 한 표 부탁한 게 아니라 심기를 살폈다.
▲ 이상득 의원ⓒ뉴시스 |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은 스스로 '중립'을 표방하는 의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계다. 이런 두 사람이 이명박계의 최고 수장이자 현 정권의 최고 실세인 '영일대군'의 심기를 살폈다.
이게 뭘 뜻하는가? 한나라당 안에서 운위되는 쇄신론의 진정성이 희박하고 강도가 약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쇄신파가 그랬다. 당정청 시스템을 개편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당정청 시스템 개편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선결돼야 하는 게 인적 개편이고 그 개편의 최종 목표는 이상득 의원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쇄신파 중에서도 일부 극소수 의원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의 쇄신 주장은 이처럼 어정쩡했다. 총론은 과격했으나 각론은 온유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듭 확인한 것이다. 황우여-최경환 의원의 '전화 한 통'은 대외적으로 표방되는 쇄신 주장과는 달리 당내 질서와 분위기는 고착돼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이명박계는 말할 것도 없고 비이명박계조차 권력의 힘에 의해 짜여진 당내 질서에 순응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 무슨 말이 쏟아지든, 어떤 방안이 강구되든 그건 말잔치에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의 질서와 분위기가 쇄신 움직임을 상쇄시킬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씨앗도 황무지에선 싹을 틔우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보약도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되는 법이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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