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장의 조합원은 이번 충돌의 배경에 사측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무력 충돌 이후 더욱 경비가 삼엄해진 29일 평택 공장에서 만난 노조 조합원은 노동자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사측을 소리 높여 비판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맞섰던 2000여 명의 비해고 조합원을 '산 자'로, 스스로를 '죽은 자'라고 불렀다.
"몇 년 씩 같이 일한 사이…어떻게 쉽게 때리겠나"
대부분의 조합원은 이날 대치에서 극한의 폭행까지 서슴지 않았던 비해고 조합원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26일 시위에 참여했던 이승욱(가명·31) 씨는 "여기서 일한 사람이라면 어떤 공구를 던지면 위험한지 뻔히 안다. (비해고) 직원은 맞으면 정말 위험한 걸 골라서 우리한테 던졌다. 너무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부 사측 직원은 중상을 입고 앰뷸런스로 실려가는 사람을 폭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승한(가명·41세) 씨 역시 비슷했다. 그는 "볼트, 너트 같은 공구를 우리에게 던지기 시작했다"면서 "그 중에는 구조 조정 발표가 나던 다음날 반대 집회를 열고 삭발하던 전 노동조합 임원들도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김 씨는 처음에는 선뜻 맞서지 못했다. 그는 "초반엔 '산 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이 먼저 공격하고 비해고 직원 중 몇 명이 동조하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말을 이었다.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숙여도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어요. 그들도 우리가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어요. 몇 년 씩 같이 일을 했는데 그걸 모를까요. 그런데 어떻게 쉽게 때리겠어요. 그 전날 그 쪽이 맨손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도 그냥 맨손으로 몰아냈어요."
"그 사람들도 다 이용당하는 것 아니겠소. 우리가 이해해야지요."
이들은 비해고 조합원들의 속내를 꿰뚫었다. 김 씨는 "그 친구들도 다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 특히 관리직은 이번 파업이 끝나면 다시 정리한다는 이야기도 돈다"며 "밖에 '산 자'들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거지, 괜히 눈 밖에 나면 어떻게 하겠나. 그런거 보면 우리나 그들이나 똑같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김 씨는 "만약 내가 비해고 통보를 받았다면, 저들처럼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서 그는 웃으면서 "물론 확성기에 대고 '너희가 나가야 우리가 산다'고 소리지르는 직원은 용서 못한다"고 덧붙였다.
얘기를 듣던 이 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는 비해고 조합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비해고 조합원 중 같이 하는 이들을 지목했다.
"지금 함께 하는 '산 자' 형님을 보면서 힘을 내고 있어요. 물론 파업 현장에 '산 자'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여기서는 다 '나는 죽은 자다'라고 보통 말을 하니, 누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죠.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끝까지 살아남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지난 26일 충돌이 있었던 쌍용차 현장. ⓒ뉴시스 |
사측의 심리전은 발전 중
2001년 부평 대우자동차 사태 때도 투쟁에 참여했다는 장익성(가명·42) 씨는 "이런 조합원과 조합원이 맞서는 싸움을 겪은 게 벌써 두 번째"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번 사태가 대우차 때와는 비슷한 양상이지만 조금 다른 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우자동차는 2000년 11월 당시 최종 부도 후 감원에 들어가게 됐고, 이에 맞서 노조는 이듬해 2월 전면 파업 및 공장 점거에 들어갔다. 이 투쟁은 4월까지 이어졌으나 결국 경찰 진압으로 끝났다.
당시도 노동자 간의 갈등이 상당했다. 2003년 이후 해고된 1600여 명이 복직된 후에도 조합원 사이에는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 장 씨는 "이번은 다름 점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좀 심해요. (사측이) 너무 심리적으로 이용하고 있거든요. 파업이 장기화 될수록 서로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어요. 회사에서 이런 일을 대비해서 미리 시나리오도 짜고 심리적으로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예요.
비해고 직원은 사측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몇 시에 어디로 집합해 파업 중인 조합원과 대치해야 한다고 알리는 내용이요.. 출석 또한 확인하기 때문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네요."
김 씨는 이런 상황을 두고 '노조의 약화'를 우려했다. 그는 "'산 자'가 사측에서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다 보면, 노조가 약해지고, 결국 이들이 언젠가 불이익을 볼 때 의지할 곳이 없다"며 "우리는 모두 다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쌍용차 평택 공장에 노-노 갈등은 없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지금 평택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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