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가입선언이 늦춰질 전망이다.
지난 21일 남북 개성접촉에서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의 신병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등 돌파구 마련에 실패한 데다, 섣불리 가입을 선언한다면 개성공단 폐쇄나 군사적 긴장고조 등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PSI의 덫'에 걸린 이명박 대통령의 고심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강경일변도가 능사는 아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PSI로 간다는 원칙과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라고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당분간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날 남북 접촉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무위로 돌아가자 일각에선 "이르면 이번 주 내 가입을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지만, 일단 '대화' 쪽에 무게를 실은 셈이다.
이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원칙은 확고하고, 눈치보고 끌려다닐 필요는 없지만 어떤 때에는 강경일변도가 능사가 아니다"면서 "북한의 의도에 대해서도 분석이 나오겠지만 기본적으로 판을 다 깨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PSI가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북의 진심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진짜 의도가 뭔지 분석부터 시작해야 할 단계"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 차원에서 대화는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는 원칙을 꾸준히 지키면서도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SI 가입 시기에 대해선 "정부에 맡겨 달라"면서 "오늘 한다, 내일 한다는 논란은 국력의 소모"라고 했다.
이어 그는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위협적"이라면서 "북한이 저렇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한국 정부의 PSI 가입이) 위협적이라는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전날 개성 접촉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면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외교안보정책 조정회의를 열고 '당분간 유보'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금명간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해 북한이 통보한 '개성공단과 관련한 남측 기업에 부여한 모든 제도적 특혜조치 재검토'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또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로부터 북한의 요구와 관련된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의견수렴에 나설 예정이다.
PSI '사면초가'…MB의 선택은?
일단 남북관계가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가 작용한 것. 하지만 PSI 가입방침은 '불변'이라고 못박으면서도 그 시기는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청와대의 '어정쩡한 태도'가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를 두고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적지 않다.
특히 현대아산 유모 씨의 억류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를 추후에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경우 한국 정부의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왜소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자국민의 안전을 포기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
"개성공단은 유지돼야 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힌 이상 섣불리 공식 가입을 선언하고 나설 여지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PSI는 북한을 겨냥한 게 아니다"는 논리를 북한이 수용하고 나설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시점부터 현재까지 갈지자 행보를 계속해 온 청와대 외교안보라인과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인책론이 오르내리고 있다. PSI 가입 '유보'가 장기화된다면 보수층의 조직적 반발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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