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 시간 줄면 행복은 커져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데, 여행하면서 그리워진 일상의 순간은 바로 출퇴근하던 때였다. 나는 일주일에 2~3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우리 집과 직장은 6킬로미터(㎞)쯤 떨어져 있고 자전거로 편도 30~40분 걸린다. 물론 나도 일요일 저녁부터 마음이 울적해지는 직장인이지만, 이 직장인의 천형(天刑)은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출퇴근길에 흩어지고 만다. 억새가 일렁이고 강아지풀이 군락을 이루는 한강의 출근길, 그리고 꽈리 열매가 흩뿌려진 듯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황홀하게 내달리는 퇴근길. 알고 보니 나뿐만이 아니었다. 설문조사 결과 통근이 즐겁다고 답한 비율이 제일 높은 그룹은 바로 걷거나 자전거 타는 집단이었다.
좁거나 없는 자전거도로, 자동차 중심 정책이 문제
그러나 서울처럼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할 수 있는 삶은 특권에 가깝다. 도심에 가까울수록 집세는 비쌀뿐더러 계속 오른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 멀리 밀려나 출퇴근 시간만 속절없이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평균 통근 시간은 28분인 데 비해 한국은 58분으로 OECD 국가 중 출퇴근 시간이 가장 길다. 게다가 집 상태를 백번 양보해 가까스로 통근 거리를 줄인다 한들,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힘든 길이 많다. 내가 출퇴근할 때 다니는 양화대교 인도는 보행자가 무심코 어깨를 바꿔 가방을 메는 등의 사소한 행동에도 사고가 날 만큼 좁디좁다. 내 주변에는 어이없이 다친 뒤 자전거 출퇴근을 포기한 친구들이 있다.
그런 우리에게 덴마크 코펜하겐은 마치 다른 세상 같다. '사이클 시크'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갑남을녀가 양복, 원피스, 치마 정장을 입고 일상에서 자전거를 즐긴다. 전체 시민 3명 중 1명 이상, 교외 거주자를 빼면 2명 중 1명 이상이 자전거로 출퇴근하여 자전거가 도시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코펜하겐 SUV'는 자동차가 아니라 캐리어를 연결해 짐을 싣고 어린이를 태우는 자전거를 뜻한다. 이는 100년 전 세계 최초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고 자동차 속도를 줄이고 자전거 전용 신호체계를 갖춘 도시의 뚝심 때문에 가능했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4초 먼저 신호를 받아 길을 건너고, 시속 20㎞로 달릴 경우 도심에서 한 번도 빨간불에 걸리지 않고 교차로를 건널 수 있다. 정책에 감동하기 쉽지 않은데, 눈이 내리면 자전거도로의 눈을 가장 먼저 치운다는 코펜하겐 시의 정책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도로에 굴러다니는 차들은 휘발유를 태워서 나오는 에너지의 5분의 4를 낭비하며, 승객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도 가장 높다. 또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오염원이기도 하다. 미세먼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중국발'을 떠올리는데, 디젤 자동차에서 나오는 '한국발' 미세먼지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자동차도로는 거리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민주주의가 머릿수에 따른 1인 1표제라면, 우리의 거리는 평등을 내팽개친 금권주의에 점령당했다. 자전거 50대와 보행자 50명은 나 홀로 자가용 10대보다 공간을 조금 차지하는데, 인도에 주차된 자동차에 그 좁은 공간마저 빼앗긴다.
자가용과 이별하고 자전거를 멋들어지게
그러니 당신의 자가용과 이혼하라. 그리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일터를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집을 구해 보자. 어쩌면 집의 크기와 상태를 약간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동거인의 일터와 학교 등이 각각 멀리 있고 길이 위험할 경우 접이식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 등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한 다음 대중교통으로 갈아타면 된다. 나야 여전히 자전거만 한 교통수단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세그웨이, 휴대용 스케이트보드 등도 많이 탄다. 이렇게 가볍고 부피가 작은 1인용 교통수단을 레저가 아닌 생활로 끌어들이자. 출퇴근길이 헬스장이 되고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 서울, 대전, 창원 등에서는 프랑스 '벨리브'와 비슷한 공공자전거 대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나는 외부 회의가 있거나 멀리 출근하는 날, 내 자전거는 집에 모셔 두고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이용한다. 1년 정기권은 3만 원이고 마일리지도 적립할 수 있다.
또 4대강 자전거 종주 길에서나 필요한 라이더 재킷과 쫄바지를 벗고 양복과 치마 정장, 바바리코트 등을 멋지게 차려입고 자전거에 오르자. 덴마크만 '자전거 시크'하라는 법 있나? 혹시 자전거를 못 탄다면 성인 자전거 교실에서 배울 수 있다. 미국도 성인이 자전거를 못 타는 비율이 13%가 넘으니 부끄러울 것 없다. 겨울에도 계속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나는 낮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만 빼고 알파카 코트 위에 패딩 점퍼를 껴입고 손 토시, 발 토시, 마스크를 한 다음 자전거를 탄다. 치마를 입을 때는 치마 가랑이 사이에 동전을 넣고 고무줄로 묶어서 치마를 고정하지만, 사실 보이든 말든 '남이사'라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자전거를 탄다. 내 꿈은 80살에 시크하게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거다.
자전거 출퇴근, 이렇게 해요
- 편도 통근 거리가 10km 이내, 통근 거리의 절반 이상이 자전거 전용도로나 강변길 등으로 자전거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면 오케이!
- 직장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주차해 놓을 공간이 있는지 확인한다.
- 직장에 샤워 시설이 있다면 금상첨화
- 헬멧을 착용한다. 예쁘게 생긴 헬멧도 나와 있다.
- 미세먼지 경보가 있는 날에는 자전거 출퇴근을 과감히 포기한다.
- 자전거 바퀴가 터지는 등 고장이 날 때를 대비하여 출퇴근 코스 근처에 있는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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