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적으로 출발한 한나라당 쇄신특위의 활동이 결국 'MB 코드 맞추기'로 귀결될 전망이다.
쇄신특위 최대 쟁점인 국정 쇄신은 청와대의 완고한 태도로 의미가 퇴색됐고 쇄신안 발표 시점도 청와대의 개각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이뤄질 것으로 보여 '인적 쇄신' 역시 청와대의 의중을 따라가는 모양새가 됐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쇄신특위'가 스스로 정면돌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물타기에 쇄신특위가 녹아들었다"는 혹독한 비판도 나온다.
'때늦은' 설문 조사에, 쇄신안 발표도 미뤄
쇄신특위 대변인인 김선동 의원은 2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쇄신안은 마련됐다. 다만 청와대와 당에 이를 건의하고 전달할 시점을 현재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비정규직법 처리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앞서 쇄신특위는 지난 15일 마련한 국정 쇄신 잠정 합의안도 청와대에 건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이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점에 정식으로 건의할 것"이라고 호기롭게 장담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쇄신안이 청와대에 전달되는 시점은 현재로선 기약하기 어렵다. 쇄신특위가 청와대 일정과 정국 상황에 휘둘려 자신있는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대통령의 눈치'를 본 정황도 분명히 있다. 쇄신특위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강화론'이 나온 이후인 26일 실시한 자체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한 것에서 드러난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 74인, 원외 당협위원장 44인 등 총 118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청와대 정부의 중도실용주의 재정립'에 대해 104명이, '인적쇄신 필요성'과 관련해 104인이 '공감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압도적 찬성이다.
왜 설문 조사가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강화론' 발언 이후에 이뤄졌을까? 국정 쇄신안이 마련된 것은 16일인데, 왜 26일에야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공식 건의'도 하기 전에 발표했을까?
설문 결과 발표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 되지 않은 쇄신안이 이명박 코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내용과 방향을 예고해준다. '중도실용 강화론'이 청와대가 내놓은 회심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내용과 방향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전에 쇄신특위가 '설문조사'를 하고 '우리가 생각한 쇄신안과 같다'고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중도 실용'에 대한 야당의 비판, 가벼이 볼게 아니다
하나 더,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쇄신 목소리'를 수렴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이 대통령은 다만 '민심'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중도실용강화론'을 천명하는 시점에 한나라당을 찾은 게 아니라 '이문동 시장'을 찾았다. 쇄신특위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강화론'이 자신들의 생각과 달랐다는 판단이 설 경우 한나라당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이 대통령의 행보를 "정치적 쇼"라고 비판한 것도 야당의 트집잡기로만 볼 일이 아니다. 말로 상징되는 현 상황을 쇄신특위는 가벼이 볼 게 아니다. 이 대통령은 "진의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의 '언행 불일치'는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촛불정국 이후 <PD수첩>부터, 네티즌, 시민들을 법정에 세우고, 이메일을 뒤진 행위는 이 대통령이 촛불시위를 보며 "반성"을 고백한 것과 도저히 연관지을 수 없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한번 더 믿어보자'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의 중도ㆍ서민 행보도 아직까지 이미지 포장 외에 이렇다할 알맹이는 없다. 국정기조의 전환으로 판단하기에는 여전히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주임무인 쇄신특위의 '중도실용 예찬론'은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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