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로 줄줄이 구속·소환된 인사들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포괄적 뇌물 수수죄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박정규 전 민정수석의 경우 포괄적 뇌물수수죄가 적용됐고, 이광재 의원 등 정치인에게는 정치자금법이 적용됐다.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관련해 알선수재나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수감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제외하면 박 회장이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살포한 목적은 권력에 대한 일상적 관리 차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현 정권을 막론하고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까닭에 '큰 부담'없이 박 회장의 돈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박연차는 꼬리표 없는 돈을 쓰는 통 큰 사람"이라는 말이 먹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꼬리표가 있건 없건 모두 불법이다.
'포괄적 뇌물수수죄'의 시초는 노태우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뇌물죄'는 구체적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어야 성립된다. 하지만 직무의 범위를 넓게 보거나 대가 관계를 광범위하게 판단할 경우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된다. 박정규 전 민정수석이 이런 경우다.
포괄적 뇌물수수죄는 지난 1995년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기소될 때 처음 적용됐다. 이후 1997년 6월 법원은 한보그룹 특혜 비리사건 선거공판에서 국회 의정활동과 관련한 청탁명목으로 돈을 받은 국회의원들에게도 이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박 전 수석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청탁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동석했던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중부국세청장이 국세청장 자리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포괄적 뇌물수수죄가 성립된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다.
물론 포괄적 뇌물수수죄 적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안기부 X파일' 등을 근거로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 떡값검사 명단을 폭로했을 때 법조계 일각에서는 "포괄적 뇌물수수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검찰은 건설업자로부터 법인카드를 건네받아 3년 간 1억 원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검사에게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소조차 하지 않은 바 있다. 부산고검 김 모 전 검사가 세종증권 로비 사건과 관련해 노건평, 정화삼 씨 등과 함께 구속된 정홍희 씨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쓴 사실이 지난 해 연말 적발됐지만 검찰은 해임처분을 내리는데 그쳤다.
"김 검사가 정씨 관련 사건 청탁을 받았는지를 조사하려고 보직 경로와 통화 내역 등을 조사했지만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검찰의 해명이었다.
엄격한 정치자금법, 공평한 적용이 관건
이광재·박진 등 정치인에게 적용되고 있는 정치자금법은 엄격하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누구든지 이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며 정치자금 모금 통로를 후원회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대법원은 "국회의원이 후원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후원금을 전달받았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적법한 경로로 받은 정치자금이라고 할지라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면 모조리 불법이 된다. 이런 까닭에 박연차 회장이 '순수한 마음'으로 돈을 줬다고 주장해도 정치자금법의 법망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
'정치탄압'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의 경우에도 "댓가성도 없고 생활비를 지원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런 까닭에 검찰이 '법대로' 칼을 휘두르면 여든, 야든 피바람이 불 수 밖에 없다. 단, 칼이 한쪽으로 휘둘리면 '검찰 마음대로'라는 비판을 피해갈 길이 없다. 민주당이 "돈도 없다는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 같은 경우는 도대체 무슨 돈으로 유학도 하고 해외여행도 다니냐"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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