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한나라당 의원들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소환 대상으로는 허태열, 권경석 의원의 이름이 거명된다.
이들은 지역구가 부산과 창원이고, 이미 구속된 송은복 전 김해시장과 부산고 동문이다. 한나라당 쪽에선 'PK, 그 중에서도 부산고 출신들이 위험한 상황이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복잡할 것 없는 두 개의 가지
'박연차 리스트'는 세 개의 큰 가지를 갖고 있다. 첫 번째는 노건평 씨로 대표되는 친노 인사들이다. 두 번째는 한나라당 재정위원이자 마당발이었던 박연차 회장이 '일상적으로 관리'했던 인사들이다. "후원금을 받았다"고 시인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나 지금 거론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검찰 고위층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추부길 전 비서관을 포함한 현 정부 관련 인사들이다. 이종찬 전 민정수석, 한 때 이명박 대통령의 사재출연 장학회 회장으로 거론되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이다.
첫 번째 가지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매섭다. 박 회장이 서갑원 의원 등에게 돈을 준 장소로 지목된 미국 뉴욕의 식당 주인을 불러들여 조사할 정도다. '노무현 50억 설'이 <조선>과 <동아>에 보도되기도 했다. "사실이 아니다"는 검찰의 부인이 뒤따랐지만 애초에 "리스트 같은 것은 없다"던 검찰이다.
친박계열이 집중된 PK지역이라 부담이 덜한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갈래에 대해서도 나름의 성의는 엿보인다. 친박 진영에서도 대놓고 반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한나라당 인사들은 "저 쪽은 댓가성이 있는 것이지만 지난 10년간 야당을 했던 우리한테 온 건 액수도 적을뿐더러 댓가성 없는 '용돈'차원이다"며 사법처리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 공기업 수사 등 몇 차례 칼을 뽑았지만 체면만 구긴 검찰이지만 돈을 준 사람이 입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좀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가지다. 박연차 회장이 추부길 전 비서관에게 돈을 준 시점은 지난 해이고, '세무조사 무마 청탁'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추 전 비서관은 "돈을 받긴 했지만 생활비로 썼고 청탁한 것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권의 임기가 4년 가까이 남았는데 추 전 비서관이 입을 열 리는 만무하다.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해 열을 올리는 눈치가 아니다.
복잡한 관계망
첫 번째 가지와 두 번 째 가지는 사실 복잡할 것이 없다. 반면 세 번 째 가지는 다르다. 지난해 여름 시작된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단순히 세금 걷으려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다 알기에 여러모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 세무조사 직전 봉하마을과 청와대는 대통령 기록물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세무조사에서 국세청이 압수한 박 회장 비서의 수첩이 현재 '박연차 리스트'의 근간이다. 박 회장이 이 세무조사를 막으려고 동분서주했음은 물론이다.
세 번 째 가지의 키는 당시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쥐고 있다. <조선일보> 보도대로라면 한 전 청장은 지난 해 11월 초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여당과 관련된 민감한 사항까지 검찰에 이첩했다. "국세청이 역시 대단하다"고 이 대통령도 흡족해했다는 것이 이 신문의 보도다.
당시는 4대 권력기관장 중 누가 살아남느냐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때다. 검찰, 국정원, 경찰, 국세청 간 상호 암투와 경쟁이 치열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명된 한 청장으로서는 한 숨 돌릴만했을 터다.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경주와 포항에서 이 대통령,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과 골프도 치고 저녁도 했다.
하지만 새해 들어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고 뜬금없는 그림로비 의혹에 연루돼 사퇴하고 말았다. 이후 두 달이 넘는 동안 국세청장 자리는 공석이다. 그리고 임채진 검찰총장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검찰은 한 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여러 점으로 이뤄진 학동마을 중의 한 점은 현 정권 실세 쪽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얼마 전 국회에서 김경한 법무부장관에게 "왜 그림 로비 의혹은 수사하지 않았냐"고 따진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현 정권에 대한 박연차 회장의 로비는, 그 로비 자체로서가 아니라 나비효과로서 의미가 더 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박연차의 '재기 의지'와 한상률의 출국이 결합하면?
그런데 한 전 청장은 지난 15일 '공부하러 간다'며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박 회장이 '재기'를 노리려면 세 번째 가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검찰도 굳이 잘 안 보이는 증거를 찾으려 할까? 거기다가 한 전 청장까지 한국을 떴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세 번째 가지에 대한 수사는 별 진척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물론 지난 해 세무조사 국면에서 '봉하마을과 가까운 사람' 꼬리표가 붙어있는 박연차 회장이 크게 로비를 시도했더라도 권력 핵심에 접근하긴 쉽지 않았을 수 있다. 천신일 회장, 이종찬 전 수석 등은 박 회장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두터왔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쨌든 말만 무성하던 첫 번째 가지는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야 드러났다. 검찰이 과연 살아있는 권력의 문제까지 건드릴 수 있을 것인지가 사실상 이번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핵심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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