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으나 촛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탄핵 다음 날인 10일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80여만 명(오후 8시 30분)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전국적으로는 104만 명이 모였다. 헌정 사상 최대로 모인 지난 3일보다는 못 미치지만 탄핵 가결과 영하의 추운 날씨임을 고려한다면 적지 않은 인원이다.
탄핵안이 가결됐으나 여전히 시민들의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았음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2.10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을 열고 국회의 탄핵 가결 이후 첫 촛불을 켰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매주 촛불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국민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내려와라!"
이날 촛불 집회를 찾은 가수 이은미 씨가 "광장에 나온 여러분과 이것은 한 번 꼭 해보고 싶었다"며 구호를 외치자 이날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도 그의 구호를 제창했다.
이은미 씨는 "오랜 시간, 대한민국엔 청산이란 역사가 쓰인 적이 없다"면서 "어제(9일)가 제대로 된 청산의 역사가 쓰인 첫날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탄핵안 통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날 모인 이들에게 "늘 깨어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오늘은 작은 기쁨이지만, 첫 단추를 축하하는 자리인 만큼 옆 사람 손도 잡아 주시고 껴안아 달라. 더 좋은 대한민국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함께 공연을 펼친 가수 권진원 씨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권 씨는 "어제 국회에서 희망의 표결이 있었다"면서 "우리 국민의 힘은 위대하다"고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권 씨는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정경유착, '세월호 7시간' 등 묻힌 진실이 너무나 많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하지만 지금의 촛불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로 환히 비춰 줄 것"이라며 "우리는 이런 추운 날씨에도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제 다들 닭은 드셨나요?"
"모두 얼굴이 밝다. 기쁘죠? 어제 저녁, 닭 드셨나요? 잘했어요.(웃음)"
이날 마이크를 쥔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전날 탄핵안이 처리된 것을 두고 기쁨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탄핵이 끝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가 시작"이라며 "촛불은 박근혜가 내려올 때까지, 그리고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재벌이 구속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 오늘도 이렇게 모인 국민을 누가 이기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이겼으나 아직 끝낼 수 없다. 헌법재판소에만 맡기지 말고 광장 촛불을 끝까지 지켜서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자"고 촉구했다.
늘 현장에서 굳은 얼굴을 보여줬던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도 이날만은 무대에서 웃음을 보였다. 그는 "오늘은 정말 기분 좋다"며 "갑작스럽게 무대 위에 올라오게 됐는데, 미리 알았으면, 차움병원에 가서 대리처방 받고, 리프팅도 하고 올라올 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올라왔다. 죄송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어제 우리는 약 40명의 가족들이 국회에 가서 탄핵의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봤다"며 매우 긴장도 했고, 가슴 떨리는 순간도 경험했고, 그리고 탄핵이 가결되는 순간, 기쁨과 회한과 희망의 눈물도 함께 흘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이제는 할 수 있겠구나. 이제는 정말 시작할 수 있겠구나' 이런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되었으니까, 국회가 국민의 말을 이번에는 들었으니까, 그래서 희망을 갖게 된 걸까? 아닙니다. 저희들이 이제는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희망을 갖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박근혜 탄핵을 결국에는 이루어낸 국민 여러분의 힘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맞습니까?(환호)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모든 책임자들을 철저히 처벌해 내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그 모든 것들이 국민 여러분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맞습니까?(환호)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힘을, 여러분의 응원을 믿고 저희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날 그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환호)"
"박근혜가 제 발로 내려올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자신을 이대생으로 밝힌 학생은 전날 탄핵안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했다.
"박근혜 탄핵안 가결은 100만, 그리고 200만 촛불들의 승리입니다. 탄핵안 가결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우린 헌재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탄핵안 가결됐으니 박근혜, 당장 내려와야 합니다. 이정현, 장 지져야 합니다.(환호)
박근혜는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호화 생활을 누리면서 관저에서 TV로 촛불 관람할 것이 아니라 100만이 모인 이 광장에 나와 촛불로 심판받아야 합니다.(환호) 박근혜가 그렇게 제 발로 내려올 때까지 광장에 모인 촛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헬조선에서 연애도 취업도 먹고살기고 힘든 청년들, '탈조선' 하고자 했던 청년들, 박근혜 지지율, 몇 %입니까? 0%로 수렴합니다. 박근혜가 청년들에게 뭘 해 줬습니까? 어떤 막말들만 있어왔습니까?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탈조선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 대학생들 청년들이 만들어가겠습니다.
대학생들 다음 주면 많이 종강합니다. 내려가기 전에, 종강파티하기 전에, 광장에 모여서 '종강 촛불'을 만들어 가겠습니다.(환호) 12월 17일 '대학생 종강 촛불'로 '박근혜 즉각 퇴진' 목소리, 마지막으로 더 크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촛불'로 '박근혜 즉각 퇴진'할 때까지 광장을 뜨겁게 달굴 것입니다. 대학생들, 박근혜 퇴진할 때까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촛불 밝히면서 계속 열심히 싸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환호)"
시민 3만여 명, 헌재 앞에서 "탄핵을 인용하라"
이날 광화문광장에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을 부르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진행했다. 행진 대오에는 ‘범법자 구속’이라고 적힌 쇠창살 구조물 안에 죄수복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들어있기도 했다.
청와대 100m 앞에 있는 효자치안센터 앞에 모인 시민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징, 장구, 꽹과리 등을 치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축하했다. 또한, '황교안도 공범이다. 직무대행 물러가라', '친일독재 역사교과서 철폐하라'고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기는가 하면, 탄핵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또한, 청와대로 행진하던 3만 명의 시민들은 헌법재판소 앞 사거리에서 행진을 멈추고 20분간 "탄핵을 인용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국민이 탄핵했다' 등 구호와 함성, 노래 합창 등을 진행했다. 이후 '하야가'를 부른 뒤, 다시 청와대 앞 효자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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