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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바라보니

[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 한글 선시(禪詩)] 이·렇·게·읽·었·다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 ⓒ만해마을

구중서 |미물을 사랑하는 큰 마음

님의 마음은 너무 큰데 아울러 중생들 세속살이 작은 구석까지 공들여 챙기시니 그야말로 광막한 우주와 지상의 미물을 함께 지니심이다.

오현 스님의 시조에는 벌레가 나오곤 하는데 벌레야말로 지상의 한 미물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니」가 시조의 제목인데 바라보는 대상은 한 마리 벌레이다. 작자가 자신을 이 벌레인양 보려한다.

벌레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 하기도 하고 온갖 것 다 갉아 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미물이라 해도 다 갖추어진 생명 활동의 공간을 보여 준다.

결국 작자는 작은 것과 큰 것이 하나로 소통하는 공간에 자재하고 있다. 오현 스님의 또 다른 시조 「적멸을 위하여」에도 ‘벌레’가 나온다.

“어차피 / 한 마리 /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 이 다음 숲에서 사는 /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이 시조에서 새의 먹이가 되고자 하는 벌레는 더욱 미약한 존재다. 그러나 이 죽음은 허무한 손상이 아니다. “삶의 즐거움 모르는 놈이 /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가 작품 초두에 얹혀 있다.

죽음도 즐거움이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삶의 즐거움’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큰 사랑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구중서 문학평론가, 수원대 명예교수,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권성훈

김옥성 | 우리는 이 시에서 생태학적인 안목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먹고 배설하고 번식하는 점에서 벌레나 사람이나 한 가지라는 시적 상상력은 생명 평등의 생태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다.

조오현 시에 충만한 이와 같은 생태론적 인식은 불교의 우주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교적 우주론의 가장 큰 특징은 대칭성(symmetry)이다. 대칭성의 원리는 ‘벌레의 우주-인간의 우주-더 큰 우주’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든다.

이 시에서 화자가 벌레를 내려다보는 행위에는 더 큰 존재가 나를 굽어보고 있으리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이와 같은 불교의 대칭성의 우주론은 벌레와 인간과 신, 그리고 물질들까지도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윤회론과 같은 사상은 그러한 우주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불교의 우주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만유를 대칭적인 혈연관계로 묶어놓게 된다. 그러한 불교적 사유는 자아를 벌레라는 왜소한 존재로 축소시켜 겸손하게 만들며, 다른 한편으로는 더 큰 존재로 확대시켜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출처 『시인세계』, 「윤리와 사유의 마루」에서 발췌, 2007. 겨울호 <김옥성 시인, 평론가, 단국대 교수>. ⓒ권성훈


조오현 스님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 ‘만해대상’과 ‘만해축전’을 만들었다.

1966년 등단한 이후 시조에 불교의 선적 깨달음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시조문학상과 가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문학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조계종 포교대상, DMZ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1959년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 및 제8·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원로회의 의원을 맡고 있으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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