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시대라고 우쭐하지만, 사람은 자연 앞에서 참으로 미약한 존재다.
지난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하루 물 사용량을 25% 줄이는 '물 사용권 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과거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한해 내내 그 눈이 녹은 물이 식수를 더해 주었다. 그런데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로 4년째 로키산맥에 눈이 적게 내려 가뭄이 악화되어 결국 강제 절수 명령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 정부가 한 일이 겨우 한시적 단수 조치였다는 건 정말 놀랄 일이다.
지구촌의 또 다른 지역 중 한 곳인 인도. 자연 앞에 무기력한 건 인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초 델리 정부는 심각한 대기 오염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 조치의 하나로 대기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건축 공사와 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델리에는 심각한 스모그 탓에 초미세먼지(2.5PM 이하) 농도는 안전 기준인 60의 16배나 되는 999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취한 조치는 일시적인 건축공사 중단이나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뿐이었다.
지난 2012년 자료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인구 10만 명 중 159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해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여름 우리는 70대 노인들도 "난생 처음"이라는 폭염을 겪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 배경에는 느슨한 환경기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환경부 '미세먼지 환경기준 초과 실태' 자료에 의하면,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의 경우 2013~2015년 3년 연속 대기환경 기준을 100%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미세먼지 하루평균 기준(PM10이 100㎍/㎥, PM2.5가 50㎍/㎥,이는 WHO의 잠정목표Ⅱ에 해당)은 WHO의 권고기준(PM10 50㎍/㎥과 PM2.5 25㎍/㎥)보다 훨씬 느슨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상황도 느긋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극심한 가뭄은 자연재해일까? 인재일까? 미세먼지가 극심한 것은 자연재해일까? 인재일까? 나타나는 현상은 자연재해일지 몰라도 그 발생 원인엔 인간의 탓이 크다. 가뭄이나 홍수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지구온난화는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것이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세먼지는 산업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지난해 12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21세기까진 지구온도를 2도(℃) 이상 오르지 않게 하려고 전 세계 196개국이 파리에 모여 회의를 하고 그러자고 합의한 것 아닌가.
지난 9월 'ACCE 한국조직위원회'와 '전환을 위한 기후행동 2015'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 koFID'가 공동 주최한 워크숍에서 인권학자로 유명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 있는데, 두고두고 여운을 남기는 명강의였다.
조 교수는 '기후변화와 인권'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권인데, 맑은 물을 마실 권리는 바로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거였다. 마찬가지로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도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했다. '너무 기본적인 명제여서 잊고 있었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자리였다. 미세먼지나 지구온난화는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유 이전에, 다음 세대의 건강과 수명과 환경권을 위협하는 이유 이전에,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권을 위협하는 이유만으로도 극복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촛불을 드는 요즘, 우리는 우리의 기본권을 확보하고 누리는 것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맑은 공기를 마실 기본권에 무관심한 탓에, 미세먼지 기준이 WHO 기준보다 느슨해진 것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음 세대를 위한 것도 물론이지만, 우리 세대의 건강을 위해서도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와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 우리는 당장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4대강의 오염을 개선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주장하자.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주장하자.
촛불을 들어야 할 일이 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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