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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처럼 동면에 들지 않더라도…

[살림이야기] 현미밥·갓김치·굴김국·돼지고기더덕불고기

김장을 마치고 메주를 쑤어 처마 밑에 걸었다. 며칠 지나 동지팥죽을 쑤어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지리산의 한 해는 마감이 된다. '작은 설'이라고 하는 동지(冬至)까지 지나면 손가락으로나 꼽을,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의 숫자들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새 달력을 펼쳐 놓고 식구들 생일을 기록하고 제사를 챙겨 적는다. 휴일이 며칠이나 되는지 세어 본다. 365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휴일을 기다리는 직장인도 아니면서 괜한 짓을 하는 이유는 산골의 긴긴 겨울에는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눈이라도 올라치면, 사립 밖을 드나들기 힘드니 불 밝히고 책을 읽다 바느질을 하다 몸살을 한다. 집 밖 활동은 줄었으나, 평소에 벼르고만 있던 일감을 펼쳐 들고 설치다 종종 날을 새기도 한다. 개구리처럼 동면에 들지는 않더라도 잠을 충분히 자 두어야 하는 겨울임을 잊고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지리산의 겨울은 집마다 수고한 농사의 결과가 창고에 그득하니 마음마저도 넉넉해지는 계절이다. 때맞춰 담가 놓은 김장김치가 있고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도 있으니, 다가오는 새해를 설레며 기다린다.

ⓒ류관희

최초의 쌀 현미로 밥을 짓다

지리산의 북쪽 산내엔 넓은 논이 없다. 농촌이라기보다 산촌에 가까운 마을이지만 그래도 집에서 먹고 외지 자식들에게 보낼 만큼은 쌀농사가 된다. 최근엔 '실상사'의 귀농학교에서 귀농 공부를 마친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살면서 그들이 농사지은 쌀은 대부분 인맥을 통해 직접 도시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정부의 쌀 수매가 등으로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쌀 주산지가 아니라고, 쌀 맛까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젊은이들은 처음엔 서툴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들 농사 노하우가 쌓여 밥맛의 풍미가 제법이다. 추수가 끝나면 쌀농사 없는 내게도 '먹어 보라'며 조금씩 나눠 주는 것을 얻어먹는 재미도 제법이다. 얻어먹는 대부분의 쌀은 쌀의 겉껍질만 벗긴 현미라, 오랜 시간 불리고 밥을 해도 입안에서 거칠기만 하니 성가셔서 밥을 하는 데 자꾸 공력을 들이게 되는 불편함은 있다. 영양과 건강을 얻는 데 대한 수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쌀은 봄부터 가을까지 긴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아주 평화로운 성질과 함께 땅의 온전한 맛인 단맛을 갖게 된다. 쌀은 그 평화로운 성질과 단맛으로 비위를 튼튼히 하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입이 마르는 증상, 구토와 설사, 병 후 허약함, 소화불량, 식욕부진, 영아가 젖을 토하는 것 등 다양한 증세에 여러 형태의 밥이나 죽으로 활용되어 왔다. 쌀을 씻을 때 나오는 쌀뜨물조차 달고 찬 성질을 지녀 몸의 열을 내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나는 증세에 효과가 있으니, 이래저래 참으로 유용한 작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밥을 많이 해 먹어야 한다. 밥이 주식인 나라에서 하루에 두 끼를 면이나 빵에 내주고, 쌀로 지은 밥은 한 끼만 먹는다고 하니 걱정이다. 맵고 짜고 달고 시고 쓴 음식들을 밥상에 올리는데, 그 가운데 밥이 있어야 그런 뾰족하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부드럽게 하나로 아울러서 조화롭게 몸 안에서 쓰이게 하는데 말이다.

잠을 30분쯤 반납하고 일찍 일어나 새벽 찬 공기를 데우며 부지런을 떨어 현미밥을 지으면, 어쩐지 하루의 반을 의미 있게 산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손톱만큼 건강해진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진다. 정성 들여 지은 현미밥을 꼭꼭 씹으면서 천천히 하루를 설계하고 활동을 시작하니, 허둥거릴 일이 없어 그만큼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게 된다. 밥하는 데 들인 30분이 주는 선물인 셈이다.

현미밥

재료
현미 2컵, 물 3컵

만드는 법
쌀(현미)을 씻는다.
a. 쌀에 물을 붓고 대충 씻는다는 기분으로 휘휘 저어 재빨리 물을 버린다.
b. 철망으로 된 작은 체에 쌀을 넣고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현미 표면에 상처를 입힌다는 기분으로 박박 씻는다.
c. 두세 번 더 휘휘 저으면서 씻어 물에 담가 5~6시간 이상 불린다.
불린 쌀과 함께 압력솥에 물을 넣고 중간불로 밥을 하기 시작한다.
밥이 천천히 끓기 시작하면서 추가 칙칙 소리를 내고 흔들리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15분간 더 두었다가 불을 끈다.
저절로 김이 다 빠지면 뚜껑의 가장자리로 모여 있던 물이 밥에 떨어지지 않게 한쪽으로 기울이며 뚜껑을 연다.
밥솥 가장자리로 주걱을 돌리면서 재빨리 밥을 들어 살살 펴면서 위아래로 고루 섞어 밥을 푼다.

곰삭혀 먹는 재미, 갓김치

김장을 하면서 갓김치를 빼놓으면 어쩐지 허전해서 겨울이 재미없다. 특히나 푹 삭아 젓갈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흰밥을 부르는 그 맛을 잃고 봄을 맞을 수 없어 갓김치는 귀찮아도 꼭 담근다. 갓김치는 다른 김치와 달리 쪽파를 잔뜩 넣고 담가야 더 맛있다. 갓 한두 줄기 쪽파 한두 줄기 같이 나란히 잡고 돌돌 말아 김치 통에 담아 두었다가 한 덩어리씩 꺼내 먹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 갓 지은 밥이 없다면, 뜨거운 물에 말아 찬밥을 한술 뜨고 손으로 갓 하나 길게 늘여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맛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갓이나 쪽파를 통째로 길게 담그는 것이 성가시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담가도 좋다. 그랬다고 맛이 어디로 도망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항(抗)돌연변이 효과가 있는 십자화과 식물 중 하나인 갓은 성질이 따뜻한 재료다. 따뜻한 성질과 매운맛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준다. 폐와 소화기도 도우므로, 특히 날이 찬 겨울엔 갓으로 음식을 해 먹으면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 따뜻한 매운맛은 급만성기침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나 담이 많은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며 방광결석과 소변불통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채소류에선 비교적 단백질이나 칼슘, 인, 철분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A와 C가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갓의 종자에 함유된 시니그린은 미로시나아제에 의해 머스터드오일이 되어 특유의 향과 매운맛으로 많은 사람에게 향신료로 사랑받고 있다.

갓김치

재료
갓 1kg, 쪽파 500g, 생굴 200g, 밤 5개, 잣 1큰술, 배 1개, 실고추 약간
절임 : 소금 1/2컵
양념 : 멥쌀 풀 1컵, 멸치액젓 1.5컵, 고춧가루 1.5컵, 다진 마늘 3큰술, 생강즙 1큰술, 통깨 1큰술

만드는 법
갓과 쪽파는 깨끗이 다듬고 씻어서 가지런히 담아 물기를 뺀다.
갓과 쪽파를 분량의 소금을 뿌려 절인다.
굴은 3% 소금물에 흔들어 씻어 건져 물기를 뺀다.
밤은 편으로 썰고 배는 껍질을 벗겨 밤과 같은 크기로 썰고 애매한 부분은 즙을 낸다.
실고추는 3~4cm 길이로 썬다.
넓은 그릇에 멥쌀 풀과 멸치액젓을 담고 고춧가루를 넣어 불린다.
불린 고춧가루에 마늘, 생강즙, 실고추, 배즙, 통깨를 넣고 잘 섞는다.
배와 밤, 잣, 굴도 넣고 버무린다.
절인 갓과 쪽파를 3~4가닥씩 모아 만들어 둔 양념을 발라 통에 담는 것을 반복한다.
배추 우거지 등을 한 겹 덮어 한 달 이상 숙성시켜 먹는다.

겨울 바다의 강자 굴과 김이 만난 굴김국

11월에 짧게 나오는 곱창김을 시작으로 우리 집은 겨우내 밥상에서 김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도 나지만 김의 산지인 완도에서 나고 자란 남편이 김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들기름을 발라 구워 먹기도 하고 기름과 소금기 없이 구워 간장 곁들여 쌈으로 먹기도 한다. 가끔은 김 자체의 맛에 빠져 날 김을 그냥 상에 올리기도 한다. 겨울 간식으로 김으로 만든 부각만 한 것이 또 없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김의 검은빛이 겨울을 상징하여 겨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식재료가 김이다.

겨울에 김 이상으로 사랑받는 해산물이 굴이다. 바다 산물 대부분이 저마다의 향을 지녀 그 향에 취해 먹는 사람이 많은데, 굴이 그 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입에 넣으면, 먼저 짭조름하면서 단맛이 느껴지고 목으로 넘어간 뒤에도 계속 비릿한 향이 남아 다시 굴을 부르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별나게 까다로운 조리를 하지 않아도 맛과 향이 좋은 굴과 김은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같이 먹으면 또 다른 맛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런 음식 중에는 누구나 쉽게 조리할 수 있고 노력에 비해 맛이 좋은 굴김국이 있다. 더구나 국을 끓이는 시간이 짧아 더없이 좋다. 신선한 굴을 구하기 어려울 땐 해물로 맛을 낸 국물만 있으면 김만 넣어 끓여도 훌륭하다. 올겨울에도 변함없이 굴김국은 상에 자주 오를 예정이다.

굴김국

재료
물 6컵, 굴 200g, 김 4장, 다시마 1장, 간장 1작은술, 소금 약간, 대파 1뿌리, 매운 고추 1개

만드는 법
굴은 3% 소금물에 살살 어루만지듯이 씻어 건진다.
김은 프라이팬을 달궈 기름 없이 구운 뒤 부순다.
물 6컵을 냄비에 붓고 다시마 1장과 함께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 내고 굴을 넣는다.
굴을 넣은 물이 한소끔 끓으면 김을 넣는다.
간장을 넣어 색과 맛을 내고 모자라는 간을 소금으로 한다.
어슷하게 썬 대파와 고추를 넣고 불을 끈다.

품위 있고 누구나 즐기는 맛, 돼지고기더덕불고기

지리산 뱀사골 깊은 골짜기의 삶에 소고기는 없다. 산이 깊고 들이 부족해 소가 농사에 크게 필요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중앙에서 멀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소득이 적은 동네였던 것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신에 골골이 돼지를 키우는 곳이 많아 지리산은 돼지고기가 아주 친근한 먹을거리가 된 것 같다.

흔히 돼지고기는 직화로 구워야 제맛이라 하지만, 시간을 잘 조절해 익힌 수육만 못하다. 육질이 쫀득하게 살아 있는 수육을 새우젓국에 찍어 잘 익은 김치와 싸 먹으면 산골에 사는 사람의 행복이 뭐 따로 있나 하는 마음마저 든다. 김장하느라 준비해 둔 멸치젓갈의 살을 발라 식초 몇 방울 넣고 매운 고추 다져 무친 것을 수육에 얹어 생배추와 함께 쌈으로 싸면, 오늘만 살다 죽어도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담백하고 감칠맛 나는 수육이 싫증이 나면 매콤하게 담가 놓은 고추장을 떠다가 매운 볶음을 해 먹는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땀이 나니 추운 겨울을 나는 데 그만이다.

돼지고기가 주인공인 음식은 참 많지만, 나는 맛에 품위도 있으면서 향이 좋으며 어린이나 어른 모두 즐길 수 있는 조리법으로 더덕과 함께 만드는 돼지고기불고기를 권하고 싶다. 건조한 계절에 목과 폐를 촉촉하게 해 줄 음식이니 이 계절에 한번 해볼 만하다.

돼지고기더덕불고기

재료
돼지고기 앞다릿살 600g, 양파 1개, 대파 1뿌리, 더덕 5뿌리, 매운 고추 1개, 맛간장 6~7큰술, 후추·통깨 약간, 들기름 2큰술, 참기름 1큰술

만드는 법
돼지고기의 핏물을 뺀다.
양파는 깨끗이 씻어 굵게 채 썰어 놓는다.
대파는 깨끗이 씻어 길이로 반을 갈라 4~5cm 길이로 어슷하게 썬다.
고추도 깨끗이 씻어 어슷하게 썰어 놓는다.
더덕은 껍질을 벗기고 반을 갈라 방망이로 두드려 찢어 놓는다.
돼지고기를 그릇에 담고 분량의 맛간장과 후추를 넣어 버무린다.
버무려 놓은 돼지고기에 손질한 더덕을 넣고 버무린다.
달군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른 다음 재워 둔 6을 넣고 센 불에서 국물이 생기지 않게 볶는다.
돼지고기가 반쯤 익었을 무렵 양파를 넣고 같이 볶는다.
대파와 고추를 넣고 마무리한 뒤 불을 끄고 참기름과 통깨를 넣고 잘 섞은 뒤 접시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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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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