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2017년 12월에 19대 대선은 열리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자신의 임기 단축을 재임 중에 공언한 대통령이 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의 총에 맞아 하야했다.
앞서 총리 선출권을 국회에 던져 재미를 봤던 박 대통령은, 자신의 거취 및 퇴진 일정까지 모든 것을 국회 '용광로'에 던져 넣었다. 친박, 비박, 더불어민주당 주류, 비주류, 국민의당 주류, 비주류, 정의당에 각종 장외 개헌 세력까지 뒤엉켜 있는 국회(정치권)가 모종의 결론을 낼 때까지,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다.
향후 진행될 특검 수사는 아마도 "현재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국(경제 안보 포함)에 대한 수습 방안 마련(유영하 변호사)"으로 바쁜 상황이라 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돌이표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시간은 간다. 헌법상 권한은 유지된다. 정치권에 복잡한 매듭을 던지는 것으로, 간단히 본인의 입장을 갈음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탄핵 거부, 혐의 불인정, 촛불 민심에 기름 붓나?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거부하고 눈앞에 닥친 탄핵을 회피하려는 '꼼수'를 내보였다. 박 대통령은 29일 3차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거취조차 국회에 공을 넘긴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추진하는 탄핵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탄핵을 거부하고 친박계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이름 붙인 건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서청원 의원 등 이른바 '골박(골수 친박)' 의원들이 건의한 방안은 현시점에서 야당 중심으로 추진되는 탄핵을 거부하고 거국 내각 총리를 올린 후 대통령이 권한을 이양하는 방식의 안을 말한다. 이 조건으로 대통령 본인은 '임기 단축'이라는 카드를 내놓은 셈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며 이번 제안이 물러설 수 있는 최대치라는 것을 강조했다.
문제는 우리 헌법에 '예고 하야'라든지 '예고 퇴진' 같은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2선 퇴진 요구도, '책임 총리' 요구도 "헌법에 없는 내용"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해왔다. '꼼수'로 일관해 왔다. 불리할 때는 헌법을 찾았다.
그런 박 대통령이 헌법에 없는 절차를 던졌다. 자기모순이다. 정치적 꼼수가 엿보이는 이유다. 헌법에 없는 '정치적 약속'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대통령의 태도는 촛불집회 등을 통해 표출된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에 대한 즉각 하야 내지 즉각 탄핵 여론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70%를 상회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탄핵 거부' 및 '퇴진 거부'는 이같은 '촛불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다.
검찰 수사를 거부해 왔던 박 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마치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 장면을 보는 것과 같았다. 자신이 범죄 피의자로서 받고 있는 최순실 씨 및 차은택 씨와 공범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결백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인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 김상연 기자가 "최순실 씨 등과 공범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냐"고 질문을 던졌지만, 박 대통령은 "여러 가지 무거운 말씀을 드렸다"며 "여러분께서 질문하시고 싶으신 것도 그때 하셨으면 좋겠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그리고 곧바로 단상 뒤로 사라졌다. '공범 관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세 차례나 거부한 채 장외에서 주장한 '결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대통령의 '결백' 주장 역시, 본인의 범죄 혐의를 근거로 추진되는 국회의 탄핵 절차에 결코 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국회 친위대, '골박'들에게 대통령의 교시가 내려왔다
대통령이 헌법에 없는 제안을 했다.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에만 규정돼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임기 단축'을 위해 헌법을 고쳐야 한다.
일단 탄핵 반대, 임기 단축이라는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이 떨어졌다. 이제 친박계가 움직일 차례다. 새누리당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친박계와 이에 동조하는 정진석 원내대표 등은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론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관련해 '친박계가 대통령 임기와 대통령제 관련한 원포인트 개헌을 던지고, 거국내각 구성에 참여하면서 박 대통령을 적극 비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장 이날 예정된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주목을 받는다. 친박계는 대통령이 임기 단축 카드를 던진 만큼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 진영의 탄핵 추진을 중단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탄핵은 안 된다'는 시그널을 준 만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탄핵을 놓고 고심 중인 비박 진영 일부 의원들이 이탈하면 탄핵안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2일로 예정된 탄핵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새누리당 비박 진영 일부가 여전히 탄핵에 나설 경우 친박계는 탄핵 찬성 의원들로 '블랙리스트'를 만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만약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수용, 비박계를 포함해 탄핵 반대를 결의한다면, 거센 후폭풍에 직면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담화에 포함된 사과 수준이 기존 사과에 비해 오히려 수위가 낮다는 점 등에서 이미 박 대통령 퇴진으로 기운 민심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시사한 것만 제외하면 이번 대통령의 담화문은 기존의 미온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거국 내각 총리, 개헌 이슈 등으로 정국을 혼탁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만 내비쳤다. 야권 분열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