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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함백광업소 기념공원, ‘정체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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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함백광업소 기념공원, ‘정체성’ 논란

폭발사고 역사성 무시하고 단순 기념공원 전락

강원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폐광부지에 조성된 공원은 역사적인 가치를 간직한 곳이지만 단순한 기념공원으로 전락해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 정선군에 따르면 국가경제 개발시대 기간산업으로 중추적 에너지 자원을 생산했던 함백광업소 폐광부지에 지역주민과 석탄공사 친목단체의 건의를 수용해 탄광에서 희생된 광부들의 추모를 겸한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총 1억 9000여만 원을 들여 완공한 기념공원은 지난 1993년 폐광한 신동읍 함백광업소 자미갱 주변에 탄광사고로 희생된 광부들을 추모하기 위한 산업전사 추모비와 광부조각상 등이 세워져 있다.


▲1979년 4월 14일 함백광업소 자미항 폭발사고로 형을 잃은 김달하씨가 당시 사고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홍춘봉)

지난 1980년대 중반에는 최고 2000명이 넘는 광부들이 근무했던 함백광업소는 각종 탄광사고로 175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979년 4월 14일 함백광업소 자미갱 입구에서 발생한 불의의 폭발사고로 26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한 대형 참사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이곳에 역사적인 추모를 겸한 공원조성을 기대했다.

함백광업소에 근무했던 신동읍 인근 주민들은 매년 4월 14일 위령제를 지내왔고 지난 2014년 주민 162명이 석탄공사, 한국광해관리공단, 정선군 등에 추모공원 조성을 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해 공원사업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선군이 예산을 투입해 지난달 31일 개장한 공원은 함백광업소 폭발사고 희생자 유족과 주민들의 뜻은 완전 무시되고 석탄공사 친목단체인 석우회의 일방적인 의견을 수렴해 추모공원 대신 기념공원으로 만들었다.

또 당초 기념공원 광부기념탑에는 석우회 간부와 부지기증자 등 45명의 명단을 새겨 넣었다가 추모공원 조성 취지가 반감된다며 주민들이 반발하자 유공자 명단을 개장식 이틀 전에 갑자기 삭제했다.

주민 오경호씨는 “함백광업소 추모공원은 석탄공사 간부를 위한 공원이 아니라 함백광업소 폭발사고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담았어야 하는데 단순 기념공원으로 전락했다”며 “정선군에서는 유족과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공원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1979년 폭발사고의 비극을 간직한 함백광업소 자미갱부지에 공원을 조성한 것은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라며 “함백광업소 추모공원의 가치를 훼손하는 석우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렴한 정선군의 기념공원 조성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함백지역 향토사학자 A씨는 “함백광업소는 비극적인 폭발사고를 안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며 “소중한 역사현장과 함백광업소의 가치를 보존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원이 바람직하지 친목단체의 기념공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석우회 관계자는 “우리는 지난 2012년부터 추모공원 조성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건의하고 회장을 중심으로 오랜시간 준비해 왔다”며 “추모공원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 기념공원으로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선군 관계자는 “함백광업소 기념공원 조성은 석우회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조성한 것”이라며 “광부상 등의 작품도 전문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반박했다.

한편 지난 1979년 함백광업소 자미항 입구 폭발사고로 친형(김달하씨)을 잃은 유족 김승하(75)씨는 “함백광업업소 폭발사고 현장에 설치된 공원은 의미 잃은 기념공원이 아니라 역사적인 공원으로 조성돼야 한다”며 “현재의 기념공원은 졸속으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했다.

함백광업소 이목항 채탄선산부로 근무한 김씨는 폭발사고 직후 현장에 달려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형의 시신을 수습했고 당시 유족 가운데 유일하게 현장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정선군 신동읍 함백광업소 기념공원 전경. ⓒ프레시안(홍춘봉)

그는 “사고 직후 연락을 받고 함백광업소 자미갱 입구에 달려왔다. 당시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폭발현장 땅바닥은 폭발사고로 산산조각이 난 동료들의 살점들이 발에 밟혔다. 주변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규정과 절차를 철저히 무시한 관리자들의 무책임이 당시 폭발사고를 발생시켰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기념공원으로 만든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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