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제가 끝까지 다 뒤집어 봐도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 1조 2항에 딱 한 번 나옵니다. 오로지 권력이라는 단어를 헌법 1조 2항에 국민이라는 단어와 딱 한 번 짝지어 놨습니다. 이 땅의 권력자는 바로 5000만이다, 하는 선언이 우리 헌법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권력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12일 오후 광장은 권력자들로 가득 찼다. 구름같이 몰려든 권력자들 가운데, 방송인 김제동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진짜 권력자들 위에 서서 스스로 군림하는 어떤 '권력자'를 꾸짖듯, 그는 높은 단상 대신 광장 한복판에 있었다.
광장 맞은편에 우뚝 선 세종대왕상을 보며, 그는 "나라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것을 내란이라고 하는데, 세종대왕이 말씀하시길 '국가의 근본이 백성이고, 그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국가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 했다. 즉, 백성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 시민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내란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제동 씨는 이어 "과연 여러분과 저의 생각이 다른지 궁금하다"며 눈앞의 5000만의 권력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박근혜, 오늘 하야하기 좋은 날씨"
어른, 아이, 남성, 여성,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군포에서 온 고등학교 1학년 최상준 씨가 그에게 물었다.
"김제동 씨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다. 여기 오신 분들은 다 하나의 목적, '박근혜 하야, 퇴진'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왔는데, 왜 정치권은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하는지 궁금하다."
최상준 씨는 "학생인 자신보다 어른인 김제동 씨가 더 많이 알 것 같아 물어봤다"고 했다.
김제동 씨는 "제가 더 많이 알지 않는다"면서도, "대통령 퇴진 시 국정이 불안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며 "그 사람들이 있었을 땐 불안하지 않았나. 최순실 일가가 3년간 맡았던 걸 시민이 맡겠다는데, 왜 최순실에게는 맡기면서 왜 시민에게는 하루도 맡기지 못하느냐"며 다시 최 씨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최 씨는 "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킨 적이 없었기 때문에 2선 후퇴는 안 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은 하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씨는 웃으며 "고등학생이 되면 무조건 대통령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대통령 투표권을, 중학교 2학년부터는 교육감 투표권 정도는 줘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 아이들 눈치를 볼 것 아니냐"며 투표 연령 제한을 주장했다.
다음 발언 타자는 식당 주방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50대 이순주 씨였다. 이 씨는 "토요일이 대박인데 우리 8살 먹은 아들이 이런 나라에서 더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왔다"며 "어려운 일을 우리 국민이 다 막아주면 나중에 엄한 놈들이 다 처먹는다. 이번엔 제발 그러지 말자"고 했다.
이 씨는 끝으로 명언을 남겨 자중의 폭소를 이끌어냈다. "박근혜, 오늘 하야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새누리밖에 모르고 살아서 죄송합니다!"
다음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는 휠체어를 끌고 온 유두선 씨였다.
"아침에 저희 아버지께서 저녁에 비온다는데 니가 어떻게 비를 맞고 나가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 '저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간이고 사람인데 왜 저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저도 실패를 통해 경험하고 싶은데 이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비를 맞으며 시민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유 씨는 마지막으로 "맹자께서 이런 말씀을 했다. '군주라고 해도 어리석고 혼군(昏君)은 몰아내야 한다'고"라고 말했다.
불편한 몸으로 더듬더듬 말했지만,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광장에는 따뜻한 박수와 환호가 울렸다.
5000만 주권자들의 '만민공동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샌가 등장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말씀 들으며 마음이 아팠고 부끄러웠다"며 큰절을 한 박 시장이 자리를 뜬 후 광장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발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박 시장에게로 마이크가 가자 화가 난 60대 여성이 흥분하며 항의했다. 껄껄 웃으며 그에게 다가간 김제동 씨가 마이크를 건넸다. 부산 가덕도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정치인들에 하도 놀아나가지고 그 곱던 얼굴이 이래(리) 삭았다"고 했다. 그는 "저는 동분회장 6년 하다가 1년 남겨놓고 나왔다. 농락당하고 속았다. 공무원들한테 속고 구청장한테 속고 시장한테 속고 국회의원들한테 속고 시의원한테 속고 대통령한테 속았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저는 새누리밖에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다. 이제야 보니까 세상이 이게 아니란 걸 알았다. 우리 국민 여러분.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새누리밖에 모르고 살아서 정말 죄송하다"며 "박근혜 탄핵하자"고 크게 외쳤다.
"박근혜 하야"를 외치러 와서 웃음과 감동과 희열을 느낀 두 시간, 김제동 씨는 마지막으로 광장의 권력자에게 당부했다.
"집회 문화도 이렇게 깃발은 내려가고 사람들이 보이는 집회가 됐으면 합니다. 아이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분들, 어르신도 많습니다. 함께 잘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의 폭력이나 무질서도 허용하지 않아야 정당한 분노가 방향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역사의 현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평화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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