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가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할 거란 전망이 많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실질적인 위협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에서다.
이런 가운데 선거 기간 중 트럼프의 대북 발언은 즉흥적이었고 오락가락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했다가,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대통령 당선자다. 10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가진 트럼프는 한미동맹과 대북 제재를 강조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미국은 한국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며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한반도 정책이 불확실해 현재로선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접근법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선 "동맹의 힘"을 강조하며 미사일방어체계(MD) 등 압박을 우선시한 힐러리보다 '협상 가능성'을 내비친 트럼프가 대북 정책의 전환 가능성을 걸어볼만한 상대로 보일 수 있다.
북한은 트럼프 당선과 관련한 공식 입장 대신, 압박과 제재 중심의 대북정책 전환을 기대하는 논평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었다.
10일자 노동신문 논평은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최근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생각은 실패한 개념"이라며 차기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한 제언을 높게 평가해 주목을 끌었다.
논평은 "클래퍼의 북한 핵 포기 불가능 발언이야말로 진실이고 현실"이라며 "클래퍼는 미국 정권의 교체기에 신중한 충고를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고위관리가 아주 객관적인 평가를 했다고 했다. (...) 중국의 여러 전문가들도 클래퍼가 솔직한 견해를 피력했다고 했다"며 "미국의 정책 작성자들은 클래퍼의 발언과 그에 대한 여러 나라 전문가들의 평을 참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클래퍼 국장은 지난달 25일 미국 외교협회(CFR) 토론회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생존을 위한 티켓으로 보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일종의 제한이며 이를 위해선 중요한 유인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협상을 주문한 바 있다.
논평은 이어 트럼프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 실행으로 자기가 걸머졌던 부담보다 더 무거운 짐을 후임자들에게 넘겨줬다"면서 "(클래퍼의) 견해에 기초해야만 다음기 미국 대통령이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날 <조선중앙통신>도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자 '선택을 달리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패배'로 끝나게 됐다"면서 "미국은 집권층 내부에서까지 확대되고 있는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미국 대선에 관한 북한의 보다 직접적인 속내는 지난 6월 대외선전용 매체 <조선의 오늘>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한영묵이라는 재중동포학자의 기고 형식의 글에는 "개인적 견해에 의하면 트럼프가 내뱉은 막말 공약에는 긍정할 측면이 적지 않다"며 "미국이 조선 문제에서 손을 뗀다면 북과 남은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고 협력할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는 "트럼프는 막말 후보나 괴짜 후보, 무식한 정치인이 아니라 현명한 정치인이고 선견지명 있는 대통령 후보감"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미국민이 선택해야 할 후보는 우둔한 힐러리보다 조선과의 직접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 고위급 인사가 트럼프를 긍정 평가한 경우도 있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양형섭 부위원장은 지난 5월 AP통신 인터뷰에서 당시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그렇게 된다면 나쁠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목사와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거론하며 "그들 정부(미국)가 관계 개선을 위한 긍정적인 접근을 한다면 우리도 논의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대화 의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간헐적이고 우회적으로 내비친 북한의 태도를 종합해 보면, 북한이 트럼프 시대에 대화와 협상을 타진할 가능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구갑우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이 트럼프에게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구 교수는 북한 양형섭 부위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북미 간 직접 대화에 적극적인 면이 있다"면서 "비확산론자들이 많은 민주당 쪽보다 오히려 트럼프가 기회가 될 것으로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경제적 측면에서 한미동맹의 구조조정을 시도할 것이다. 특히 방위비 분담금을 높이려는 재협상이 추진될 수 있다"면서 "북한은 이를 미국과 협상을 할 수 있는 조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또한 지난 7월 6일 북한이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평화체제 회담과 비핵화 회담의 병행 추진을 암시한 데 주목했다.
그는 "당시 북한 성명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관련 조치들을 취소하면 비핵화로 갈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인데, 이는 한미동맹을 의식한 발상"이라며 "트럼프가 한미동맹의 구조조정을 언급한 이상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갖춰질 때까지 북한이 '센 도발'을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큰 건은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도 미국의 협상 파트너를 새로 찾아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미국 새 정부 출범 전후로 협상이 시작될 수 있는 만큼 도발은 쉽지 않은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트럼프가 박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 약화 우려를 불식한 데 대해선 "그 이상이나 이하로 말하기 어려운 의례적 발언이다. 립서비스에 가깝다고 본다"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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