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모든 예상을 뒤엎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 이어 이번에도 여론조사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8일(현지 시각) 미국 대선 개표가 시작된 이후 날을 넘긴 9일 오전 2시 경 <에이피>통신은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확정했다. 트럼프 후보는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현재까지 272명을 확보해 과반인 270명을 넘겼다.
아직 개표가 종료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우세를 보이고 있는 애리조나 주, 미시간 주, 위스콘신 주 등에서 모두 승리할 경우 트럼프 후보는 30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 클린턴 후보에 100여 명 가까이 앞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후보는 최대 경합 주인 플로리다 주에서 클린턴 후보에 승리하면서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그는 2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플로리다 주에서 클린턴 후보에 1.4% 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두면서 대선 승리의 최소 조건을 마련했다.
이후 이번 선거에서 플로리다 주 다음으로 승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노스캐롤라이나 주 역시 트럼프 후보가 가져가면서 15명의 선거인단을 추가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열세를 보이던 당초 여론조사와는 달리 4% 포인트 차로 클린턴 후보를 제쳤다.
여기에 그는 18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오하이오 주에서 클린턴 후보를 약 10% 차이로 제치면서 백악관 입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오하이오 주는 미국 대선의 '풍향계'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1964년 대선 이후 오하이오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모두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요 경합 주 3곳을 모두 이기면서 유리한 고지를 밟은 트럼프 후보는 미국 내에서 '쇠락한 공업지대'로 불리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에서도 기존 예상을 뒤엎고 승기를 잡았다.
그는 16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미시간 주에서 기존 여론조사와 달리 클린턴 후보를 약 1.5% 차로 제치면서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었다. 뿐만 아니라 미시간 주 옆에 위치한 위스콘신 주에서도 기존 여론조사를 뒤엎고 2.6%차로 클린턴 후보에 앞서고 있어 승리가 확실시 된다.
러스트 벨트에서 트럼프 후보가 선전한 이유는 자유무역협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들이 지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비롯해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와 함께 트럼프 후보는 1992년 대선 이후 단 한 번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지 못한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도 클린턴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20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지역으로, 클린턴 부부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지난 7일 마지막 유세를 벌였을 정도로 민주당에서 공을 들인 지역이다. 트럼프 후보는 클린턴 후보에 1.3% 차의 낙승을 거뒀다.
인종혐오, 여성혐오보다 강했던 기성정치에 대한 반감
트럼프 후보는 기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주에서 승리를 거두며 클린턴 후보에 큰 격차로 승리했다. 미국 내 멕시코 이주민들을 마약상으로 취급하며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거대한 담장을 쌓겠다고 공언하고 무슬림들의 입국을 금지시키겠다는 발언을 비롯해 여성에 대한 비하와 음담패설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 후보를 미국인들이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기성 정치에 대한 백인 저소득층의 반란이 표로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안병진 경희대학교 교수는 "미국 사회 내의 이른바 '아웃사이더'들이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와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폭발하며 대 반란이 일어났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특히 백인 저소득층의 경우 소위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지면서 자신들이 추구하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여기에 히스패닉을 비롯해 미국 내에서 새로운 세력들이 생겨나면서 이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민주‧공화 양당에서 치러진 내부 경선에서 트럼프 후보는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주 상원의원 등 쟁쟁한 기성 정치인들을 제치고 일찌감치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에서도 버니 샌더스 버몬트 주 상원의원이 이른바 '대세론'을 형성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접전을 벌이면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정치에 대한 반감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위스콘신 주와 미시간 주 등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클린턴 후보가 패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안 교수는 "러스트벨트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이 전국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이건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기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세력들을 표로 결집시키지 못한 것도 이러한 결과를 낳은 주요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안 교수는 "힐러리는 젊은 층이나 히스패닉, 다인종 유권자 등 기존에 오바마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강력한 매력을 보여주거나 집권 이후의 비전 등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런 점이 트럼프에 비해 표의 결집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미국 방송 NBC는 2012년 대선 당시 30대 이하 유권자인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의 60%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54%만이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 경선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하던 밀레니얼 세대를 클린턴 후보가 온전히 흡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