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버리는 카드'로 귀결될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영수회담 전에 버리느냐, 영수회담 후에 버리느냐, 시점이 문제다. 야당이 김 내정자 철회를 요구하면 박 대통령이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갈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졌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은 7일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대표를 만나면 김 내정자 문제에 대해선 다시 한번 재고해달라는 부탁을 드린다는 입장이 분명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김 내정자 지명절차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내정자를 대야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 등이 야당과 협상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일단 모든 가능성을 드러내놓고 협상에 임하려 (한다)"고 말했다. '협상'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김 내정자에 대한 청문요청서를 언제 보내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정치적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에 청문요청서도 보내지 않고 있는 상황은, 김 내정자 인준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는 김 내정자 거취 문제가 '협상 카드'라는 심증을 더욱 굳혀준다.
'김병준 내정자 청문회가 열리기 어렵다면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 청문회를 먼저 진행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을 놓고 얘기(논의)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김 내정자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날 김 내정자가 추천했다고 하는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종교'에 빠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YTN이 보도한 데 따르면, 박 내정자는 지난 2013년 출간한 <사랑은 위함이다>(운주사 펴냄)라는 책에서 명상을 통해 자신이 실제로 체험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박 내정자는 명상을 하면서 바닷속이나 다른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등 모두 47차례나 지구에 다른 모습으로 왔다 주장했다. 또한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였던 전봉준 장군이 자신을 직접 찾아왔다고도 했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 영혼이 메모리칩 2개를 가지고 하늘로 가며, 하늘에는 자기 영혼의 블랙박스가 있다고도 썼다.
박 내정자는 지난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나라를 위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구국 천제' 기도회에 특정 단체의 부총재이자 진행위원장 신분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전문 무속인들조차 해당 '굿판'이 전통에 배치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박 내정자에 대해 본인이 추천했음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야당 내건 3대 전제조건, 청와대는 모두 'NO'
여야 영수회담 자체가 열릴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 내정자의 사퇴가 영수회담의 전제 조건을 걸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한 실장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신창현 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요구한 조건을 박 대통령이 이행하기 전에는 정중히 양해해달라고 (청와대 측에) 말했다"며 "이는 대표의 생각이 아니라 최고위원회의 결정 사안"이라고 했다.
추 대표는 영수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김 내정자 철회와 함께, △별도 특검과 국정조사, △대통령의 2선 후퇴 및 국회 추천 총리 수용을 함께 내걸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세 가지 전제 조건에 대해 큰 온도 차를 보인다. 먼저 김 내정자 거취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는 영수회담을 열고 논의하자는 쪽으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특검 수용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박 대통령이 수용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인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에 대해서도 앞서 언급한 청와대 관계자는 "2선 후퇴란 표현이 책임내각 거국내각과 맞물려진 것 같다"라며 "각자 입장에서 편하게 말씀하시는 거지 현행법상에서 2선 후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사실 내치나 외치나,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에 대해) 용어상으로, 법적으로 분명히 자를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용어"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벌써 만신창이가 됐다. 김 내정자의 거취는 시간문제다. 박 대통령이 김 내정자 거취를 두고 좌고우면할수록 정국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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