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를 16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삼아달라는 것. 이른바 '핵 주권론'을 주장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일 전망이다.
과학기술 정책 등을 담당하는 제6정책조정위원장 최구식 의원은 12일 "1991년도에 합의한 한미원자력협정에 의해 우리나라는 핵 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도록 돼 있다"며 "한미정상회담에서 이같은 협정의 개정 문제를 거론해줬으면 하고 당 정책위 차원에서 이르면 15일 고위당정회의에서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지난 91년 한미 원자력협정과 관련해 "핵 주권에 대한 과잉포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재처리가 가능한데, 우리 역시 재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성조 정책위의장도 "핵 재처리와 관련해 국회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구식 의원은 "정책위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한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대북문제, 안보 등을 담당하는 황진하 제2정조위장도 동의를 했음을 밝혔다.
"한미동맹 강화한다더니 오히려 망치고 있다"
핵연료 재처리는 곧바로 '핵무기 개발'과 연관될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일이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나온 당 차원의 이같은 문제제기는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이같은 입장은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환경 문제, 기술 축적 문제 등 원자력 시설과 관련한 '평화적 핵주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그는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현 시점에 왜 이같은 건의를 하기로 했느냐'는 질문에 "저 쪽은 핵실험을 하고 있고 우리는 평화적 핵처리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외교적 관계도 고려한 결정"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핵무기 비확산'을 대외정책의 핵심과제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요구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핵우산을 제공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억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미국은 핵무장론과 동전의 앞뒤에 불과한 재처리론에 누구보다 예민하다.
전직 청와대 외교안보 당국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상희 국방장관이 얼마 전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주장했다가 미국으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한나라당은 이번엔 대통령이 그런 시선을 받길 원하나"라며 "한미동맹 강화한다더니 오히려 한미동맹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러시아 등도 핵확산에 관해서는 미국과 같은 입장이라는 점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외교적 관계도 고려한 결정'이란 최 의원은 발언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정책위 차원의 건의와 관련해 그는 "당론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정조위 차원의 건의라는 말은, 정조위에 속하지 않은 의원들 중 동의하지 않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의원이 동의하는) 당론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영변핵 재처리 시설과 관련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북한에 대해 가졌던 유리한 명분을 포기한 셈이 됐다. 이와 관련해 최 의원은 "북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며 "우리는 '평화적 재처리'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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