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이정현 대표를 위시해 친박 일색으로 채워진 새누리당 지도부도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버리기로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30일 최순실 게이트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 된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거국중립내각의 경우 우리 헌정사에서 단 한번도 실시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이 제안이 대통령에 의해 받아들여지더라도 예측하지 못한 혼란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국중립내각은 특정한 정당이 아닌,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내각을 의미한다. 정치 체제로서 '정치학 교과사'에 등장하지 않는 용어지만 주로 내각제를 채택한 국가들이 전쟁과 같은 비상 시국에 꾸리는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세계제 2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처칠을 중심으로 보수당, 노동당, 자유당, 국가자유당 등이 꾸린 내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거국중립내각은 대통령에게 '내치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 최고위에서는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내각 구성을 강력히 촉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모든 인사에 대해 대폭적인 인적쇄신이 이뤄지도록 다시 한번 (박 대통령에게) 촉구하기로 했다"며 "새누리당은 선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번 사태를 수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입국한 최순실 씨에 대해 김 대변인은 "검찰은 성역없이 신속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씨를 긴급 체포해 수사, 엄벌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거국중립내각'은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향후 또 다른 논란거리를 안겨준다. 이 용어는 과거 독재 정권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주 쓰던 말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유신 정권 시절,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에 독재 정권의 실정이 거듭될 때마다 '거국 내각을 구성하라'는 요구를 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형태의 정부는 우리 헌정사에서 단 한번도 구성된 적이 없다.
정치학 박사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의 방법이나 절차는 따로 없다.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제정당이 '이렇게 정부를 구성해달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가는 것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헌법에 대통령이 정부를 구성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헌법을 넘어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되더라도, 대통령은 여전히 헌법상 국군통수권자이고 헌법상 외교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 통일, 외교, 안보 등의 분야에서까지 '국정 농단'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드러난 만큼, 박 대통령에게 해당 분야를 그대로 맡겨야 할 지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은 헌정 질서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헌법상 권한을 대통령이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맞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이 오히려 혼란을 더욱 부추길 수 있고, 나아가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된다고 해서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대한민국 대통령직'의 위상을 재고할 수도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에게 '내치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새누리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측근이자 '비서' 역할을 해왔던 이정현 대표이고, 새누리당 지도부 구성원 다수는 친박계다. '친박 돌격대' 역시 현 정국에서는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게 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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