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10년여 동안 작성해와 '대통령의 입'으로 불리는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28일 입을 열면서 '연설문 유출' 의혹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오후 3시 자신이 감사로 재직 중인 여의도 한국증권금융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후 "통상 부속실로 넘긴다"고 밝혔다. 청와대 부속실은 정호성 부속비서관이 책임자다. 연설기록비서관이었던 조 전 비서관이 연설문을 작성해 정 비서관에 넘기면 박 대통령의 최종 수정을 거쳐 다시 나오는 시스템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상하다. 청와대 부속실의 업무는 연설과 전혀 관련이 없다. 공식 업무 외 시간, 사안에 있어 대통령을 보좌하는 게 부속비서관의 임무다. "통상"이라고 말한 것은 일과 시간이건, 일과 후 시간이건 연설비서관이 작성한 연설문 초안이 대부분 정호성 부속비서관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과 후 시간에 부속비서관에 연설문을 넘겼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과 후 시간도 아닌데 "통상" 부속실에 연설문을 넘겼다는 것은 사실상 연설비서관 위에 부속비서관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와대 직제상 연설기록비서관과 부속비서관은 일반 수석실에 속해 있지 않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관할한다. 또한 각각 독립적 업무 영역을 담당한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연설비서관이 '통상' 부속비서관에게 초안을 넘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지점이다. 이 말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연설문 '독회(연설문을 대통령과 담당 비서관이 함께 읽어보는 것)'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연설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연설문을 직접 보고하지 않고 공식 업무시간에도 굳이 부속비서관에게 연설문을 넘긴다는 말인데, 일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전 비서관은 "최순실 씨를 전혀 알지 못한다"며 "연설문도 대부분 초안과 유사하게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 연설문에서 '우주의 기운' 등 논란이 된 일부 표현을 직접 썼느냐는 질문에 "청와대 보안 사항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때문에 부속실에 넘어간 연설문이 중간에 최순실 씨에게 넘어갔다는 의혹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통상적이지 않은 "통상"적 업무 시스템이 있었음을 밝힌 셈이다. 이와 함께 자신이 최순실 씨에게 연설문을 넘기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부속실로 넘어간 연설문이 최 씨에게 어떻게 들어갔는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다만 단서는 있다. <JTBC>는 전날 최순실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PC에서 발견된 2013년 8월 4일자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 모두발언용 문건의 마지막 저장 아이디는 'narelo'였다고 보도했다. 이 아이디는 정호성 비서관의 아이디다.
'조인근→정호성→최순실'로 이어지는 연설문 유출 경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더욱 강하게 든다.
그러나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날 국회에 출석해 "(지난 26일 정호성) 본인과 직접 통화를 하고 확인을 했다. 본인은 (문건을 최순실 씨에게)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재원 정무수석도 "정 비서관은 개인적으로 최 씨에게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고 저에게 대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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