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가 독일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거짓말로 보인다.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드러났다.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도 있었다. 전형적인 비리 재벌 회장의 행태다. 실제로 최 씨는 측근들에게 '회장님'이라고 불렸다.
최순실 소유 아니라는 PC에 웬 '셀카'
27일자 <세계일보>에 따르면, "태블릿 PC(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VIP보고서를 사전에 받아봤다는 주장도 있다"라는 질문에 대해 최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것을 쓸지도 모른다. 제 것이 아니다. 제가 그런 것을 버렸을 리도 없고, 그런 것을 버렸다고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 남의 PC를 보고 보도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게 유출됐는지, 누가 제공한 지도 모른다. 검찰에서 확인해봐야 한다. 취득 경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지금껏 나온 사실 관계를 모아보면, JTBC가 보도에서 인용한 태블릿 PC는 최 씨와 관계가 깊다. 지난 26일 JTBC는 이 태블릿 PC에 담겨 있던 사진 파일 두 장을 공개했다. 한 장은 최 씨의 '셀카' 사진이다. 다른 한 장은 남이 찍어준 사진이다.
또 이 PC안에 담긴 파일 가운데 일부는 '유연'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PC에서 수정됐다. '유연'은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개명 전 이름이다. 그리고 이 PC의 주인 이름이 '연이'다. '유연'의 뒷 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 PC가 최순실 씨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최순실 씨가 직접 구입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최 씨가 소유 또는 점유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적어도 최 씨의 통제 범위 안에 있는 PC였던 건 분명하다.
기밀 담긴 PC, 허술하게 관리한 책임
다만 최 씨가 태블릿 PC를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진술은 어쩌면 사실이다. PC를 입수한 JTBC 측은 손쉽게 파일을 열어봤다. PC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면, 민감한 정보에 대해선 신중하게 보안 설정을 했을 게다. 최 씨는 국가 기밀이 담긴 PC를 아무렇게나 관리했다. 아주 초보적인 기능 외엔 PC 관련 지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 다른 기밀 유출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한국 정부의 기밀에 이해관계가 걸린 집단 또는 개인에게, 최 씨의 PC를 들여다보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북한과 연계된 해커라면, 진작부터 최 씨의 PC를 살피려는 유혹을 느꼈을 게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어도, 최 씨는 잘 몰랐을 게다. 그러나 잘 몰랐다는 게 책임을 피할 근거는 될 수 없다.
안종범 얼굴도 몰랐다?…"'안 선생'이라고 불렀다"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최 씨는 "안 수석(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얼굴을 알지도 못 한다"라고 말했다.
역시 거짓말로 보인다. 27일자 <한겨레>에 따르면, 최 씨는 안 수석을 안 선생이라고 불렀다. <한겨레> 보도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안 수석은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이들 재단과 최 씨가 관계가 있는 한, 최 씨가 안 수석을 아예 모른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최 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깝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인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얼굴조차 모른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PC 취득 경위 밝혀라"?…계산된 '논점 흐리기'
최 씨가 인터뷰에서 한 말들은,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JTBC 측이 보도한 태블릿 PC에 대해 "취득 경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라고 말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기밀이 담긴 PC를 언론이 입수한 경위가 정당했는지를 둘러싼 공방으로, 핵심을 흐리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 PC가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말 역시 이런 의도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거짓말, 논점 흐리기 등에 그치지 않는다. 최 씨는 왜 지금 국민이 분노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적 동기'로 국정 개입한 게 문제…차라리 국회의원 출마했다면…
최 씨는 인터뷰에서 "제가 신의(信義)로 뭔가 도와주고 싶었고, 제가 무슨 국회의원이 되거나 권력을 잡고 싶은 게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이 대목이다. 법에 따라 권한을 위임받은 공직자가 국정에 개입했다면, '탄핵' 혹은 '하야' 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국정 방향에 대한 '비판'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 씨는 "신의(信義)로 뭔가 도와주고 싶다"라는 '사적 동기'로 국정에 개입했다. 법치주의를 흔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국민이 분노했다.
차라리 최 씨가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면, 다행이었다.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최 씨가 "권력을 잡고 싶은 게 아니었다"라고 한 건, 자신이 누린 특권에 대해 책임을 지기 싫다는 뜻일 뿐이다. 법이 정한 범위 안에 갇히기 싫다는 게다.
대통령에게 책임 떠넘기기…전형적인 '회장님' 행태
최 씨는 "대통령을 오래 봐 왔으니 심정 표현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드리게 됐다"라고도 했다. 자신의 국정 개입이 대통령의 부탁에 따른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이다.
재벌 회장들이 자주 쓰는 화법이다. 전문 경영인의 한계 때문에 창업자 또는 대주주가 나섰다는 식이다. 이런 경우, 대개는 전문 경영인이 바지 사장이다. 인터뷰 내용만 봐도, 최 씨는 확실히 '회장님'이었다. 실제로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관계자들 역시 최 씨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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