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복절이다!"
80일 넘게 본관 냉 바닥을 지키고 있던 학생들이 '특혜 입학 비리 해명', '학사 운영 정상화' 손 피켓을 든 교수들 사이를 가로질러 나왔다. '와아아'. 학생 무리에선 울음 섞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문제에 이어 최순실 딸 정유라 씨 특혜 의혹으로 내홍을 겪은 이화여대는 19일, 최경희 총장의 자진 사퇴로 드디어 '이대 광복절', 이른바 '이복절'을 맞이했다.
이날 오후 3시 30분. 이대 본관 앞 분위기는 축제나 다름없었다. 예정대로라면 최 총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이대 교수들의 시위가 열렸어야 했다. 1886년 개교 이래 처음 벌어질 불명예스러운 일을 코앞에 두고, 최 총장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이대를 상징하는 녹색 스카프를 두른 채 본관 앞에 모인 100여 명의 교수와 3000여 명의 학생은 총장 퇴진에 대한 기쁨을 나누고, 더 나은 대학 공동체를 만들자는 다짐을 했다.
이재돈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우리 이화는 130년 역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이화의 실추된 명예를 바로잡고 삐뚤어진 명예를 바로 잡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며 "학생들의 안위 보장을 가장 먼저 당부하며, 사회 공동체와 합의해 이화의 공동체를 지켜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경미 기독교학과 교수는 "기쁘다"는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제가 준비한 멘트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가장 추악한 부분과 추잡한 부분과 결탁한 최 총장은 물러나라'였습니다. 그 얘길, 이렇게 하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추악한, 추잡한 부분과 결탁한 최경희 총장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박 교수의 발언에 학생들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교수들은 "총장은 사퇴했지만 아직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다"며 미리 준비했던 성명서를 그대로 낭독했다.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화 정신을 체득하며 성장하는 동안, 최경희 총장은 이화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이 캠퍼스를 장사꾼의 탐욕, 관료적 권위주의, 제도적 폭력이 지배하는 도덕적 황무지로 전락시켰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최 총장의 해임, 본관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의 안위 보장을 비롯해,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합리적 총장 선출 제도 마련, 재단 이사회를 비롯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를 다시금 밝혔다.
김혜숙 교수협의회 회장은 총장 사퇴 후 추후 계획에 대해 "아직 의혹으로 남은 것들에 대한 사실 확인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법적 책임, 도의적 책임이 처리되어야 한다"고 했다.
최 총장이 사임을 표명하면서도 다시금 '최순실 딸 특혜는 없다'고 못 박은 데 대해선 "가지고 있는 자료나 지난 교직원 설명회 때 들은 바로는 임의적인 해석이 가해질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법적 판단에 대해서는 추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수들 사이에서도 교칙 변경에 대한 의견이 나오는데, 소급 적용의 문제는 이 학생(정유라) 외에 몇 명 있었다. 학교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며 "재단에서 이야기하는 조사위원회를 지켜봐야 하고, 학사 부정 문제는 학사 규칙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라이프 대학 사업 철회와 총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이날로 84일째 점거 농성 중이었던 학생들도 농성 해제를 선언하고 본관 밖으로 나왔다. 이재돈 교수는 "교수들이 했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80일 넘게 학생들의 희생이 너무 컸다"며 "본연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날 집회의 모든 순서가 끝난 뒤, 교수들과 학생들은 '해방 이화, 비리 척결'을 외치며 약 40여 분간 교내 행진을 했다. 교수들이 먼저 행진하도록 좌우로 길을 연 학생들은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본관에서 정문과 대강당을 거쳐 다시 본관 앞에 모인 학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이날 집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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