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병원의 레지던트가 기록한 의무 기록지에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 불명에 빠진 고(故) 백남기 씨의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미 신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담당 레지던트조차 "의식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10일 공개한 고 백남기 씨의 의무 기록지를 보면, 백 씨가 사망하기 18일 전인 9월 7일 "채혈 가능한 정맥을 찾아 봤으나 마땅한 혈관이 없음", "PICC(말초 삽입 중심 정맥 카테터) 통한 채혈 시도하였으나 역류가 잘 되지 않아 포기함", "우측 노동맥 채혈하였으나 검체량이 부족하여 다시 노동맥 또 찌름"이라고 기록돼 있다.
김병욱 의원 측은 "레지던트 3년 차가 직접 채혈을 시도했고, 심장 입구까지 연결된 관으로 피를 역류시켜 보려고 했으나, 그것도 안 돼서 부풀어서 망가진 노동맥을 두 번이나 찔렀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체에 피 검사를 할 피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던 셈이다.
백 씨 담당 레지던트는 전날인 9월 6일 의무 기록지에 "환자 본인의 생전 의사에 따른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하며, 현재 본인이 의사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거듭된 합의 내용 또한 존중해야 함에 대해 이해하고 있음을 한 번 더 공감함"이라고 적었다. 9월 6일은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기 19일 전이다.
담당 레지던트는 "뇌 전반에 걸쳐 저음영을 보이며 의식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환자의 사고 전 가치관을 충분히 고려해 환자의 신체와 존엄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에 대해 고민해 나가겠음에 대해 약속함"이라고 적기도 했다.
해당 의무 기록지에는 백남기 씨가 2015년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기 전, 평소 가족들에게 "위독한 상황에서도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중환자실 치료는 절대 받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호소했다고 적혀 있다. 가족들은 백남기 농민의 뜻에 따라 지난 7월 심폐소생술과 혈액 투석을 하지 않겠다는 '연명 의료 계획서'에 서명했다.
담당 레지던트는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해 "전공의가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지정 교수와 상의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호스피스센터, 법률팀, 의료윤리위원회 등에서 조율이 필요할 수 있음에 대해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김병욱 의원은 "전공의는 고 백남기 농민의 생전 의사와 가족들의 합의 내용을 존중하고 공감하고 있다고 표현하였으나, 혼자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을 의무 기록지에 남겼다"며 "무리한 연명 치료로 신체와 존엄이 훼손되는 것을 염려하고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물대포에 맞아 의식 불명에 빠진 백 씨가 오랜 투병 생활과 잇따른 연명 치료로 신체가 훼손돼 상태가 점점 더 나빠졌음을 말해주는 기록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담당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는 유족이 혈액 투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이유로 백 씨의 사인을 "병사"로 적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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