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 분할을 주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면서, 주주총회 표 대결을 했었다. 당시엔 삼성 총수 일가와 대척점에 서 있었는데, 이번엔 정반대로 돌아섰다. 일각에선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 부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6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자회사인 블레이크 캐피털(Blake Capital)과 포터 캐피털(Potter Capital)은 5일(현지시간) 삼성전자 이사회에 편지를 보냈다. 이들 2개 펀드가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0.62%이다. 이들은 삼성전자 주주 자격으로 이사회에 요구한 것이다. 공개된 요구 사항을 정리하면, 크게 다섯 가지다.
첫 번째,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나눈다.
두 번째, 지주회사를 현재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과 합병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
세 번째, 사업회사를 한국거래소뿐 아니라 미국 나스닥에도 상장하다.
네 번째, 주주 배당을 대폭 늘려야 한다.
다섯 번째, 삼성전자 이사회에 독립적인 이사(사외이사) 3명을 추가하라.
이들 요구 사항은 시장주의 입장에서 재벌 개혁을 주장했던 이들의 입장과 겹치는 면이 있다.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해서 통합 지주회사를 만드는 건, 삼성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싸고 나온 다양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였다. 동시에 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장악력을 키우는 방안이기도 하다.
사외이사를 늘리라거나,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고 배당 성향을 강화하라는 요구 역시 종종 나왔었다.
<뉴욕타임스>는 "엘리엇의 제안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매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삼성 가문은 세금 혜택과 함께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늘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왜 하필 지금,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런 요구를 할까. 갤럭시노트7 발화 사고로 삼성전자가 곤경에 처한 상황을 노렸다는 평가가 있다. 어려운 시기에 손을 내밀어서 존재감을 극대화 했다는 게다.
그러나 주주 자본주의와 거리를 둔 입장에선 비판도 나올 수 있다. 삼성은 이미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열거한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면, 삼성은 당장의 수익 논리에 너무 속박된다. 배당과 관련해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은 두 가지 요구를 했다. 하나는 현재 삼성전자가 갖고 있는 현금 약 78조 원(약 700억 달러) 가운데 약 30조 원을 특별 배당하라는 게다. 이는 정기 배당과는 별개다. 또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나눌 경우, 삼성전자 사업회사 잉여현금흐름의 75%를 주주에게 지속적으로 환원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 미래를 내다본 연구개발 투자, 신사업 발굴 등은 어려워질 수 있다. 장기적인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은 요구다. 국민 경제 입장에선 나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주주 입장에선 일단 반가운 일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표 대결 이후 배당 성향 강화를 약속한 바 있다.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외국 경쟁 기업에 비해 배당 성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이번 요구는 삼성전자의 과거 약속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의 요구 사항이 알려지자 삼성전자 주가는 급등했다. 6일 삼성전자 주가는 169만1000원을 기록했다. 전날보다 7만2000원(4.45%포인트) 올랐다. 주가만 놓고 보면,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으로 입은 타격을 일거에 극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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