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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런던행 보따리를 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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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런던행 보따리를 쌀 시간이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㉖여행의 끝자락에 서다

여행의 끝자락에 서다

다음 날, 에든버러 성 옆에서 15번 버스를 타고 북해 해변에 나왔다. 가느다란 빗줄기에 바람이 세게 불고, 오가는 이들도 보이지 않아 썰렁했다.

오늘 북해 해변엔 추니와 나 둘뿐인 것 같다. 바닷새들은 바람에 못 이겨 방파제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늘은 추니 생일이다. 아침에 미역국 대신 우유를 마셨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애들과 엄니와 함께 따끈한 밥상을 차렸을 텐데.

“선물 뭐 사 줄까?” 에든버러 명품 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추니는 마네킹이 입고 있는 쥐색 원피스를 멀리서 훑어보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나한테 맞을까?” “글쎄, 예쁜데…….” 보석, 목걸이, 반지, 시계 매장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백만 원에서 천만 원 이상 되는 귀금속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근두근! “우리나라보다 쌀까, 비쌀까?” “글쎄.” 명품 골목길 끝. 유턴 또 유턴.

▲에든버러 쇼핑.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에든버러 쇼핑.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드디어 골랐다. 기념품 가게에서 장고 끝에 알록달록한 목도리와 빨간색 체크무늬 장갑을 골랐다. 두 개 합쳐서 10파운드. 만 육천 원이었다.

“아니, 왜? 좀 좋은 걸로 사지 그래?” “됐네요. 이게 맘에 들어요.” 그냥 내가 골라 줄 걸 그랬나? 추니는 여행 경비도 많이 드는데 이래저래 돈 쓰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실은 거의 캠핑을 해서 여행 경비가 크게 들지 않았는데…….

이틀간 약을 복용해서인지 추니 열도 좀 내렸다. 이제 런던행 보따리를 쌀 시간이다.

스코틀랜드 화폐는 런던에서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열쇠고리 기념품을 몇 개 더 샀다. 며칠 전 독립 투표와 관련해서 런던 시민들이 빈정 상했나 보다.

“편히 잘 쉬었어요.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잠깐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비닐봉지에 뭔가를 담아 오셨다. 계란 두 개, 바나나 두 개, 과자 두 개였다.

굿바이! 에든버러!

▲에든버러 은아네집.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에든버러 은아네집.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10월 9일, 오후 4시. 런던 킹스 크로스역(King's Cross Station)에 도착했다.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4시간 40분 걸렸다.

에든버러 민박집에서 소개해 준 ‘런던아이 하우스’의 주소를 구글에 입력했다. 템스 강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템스 강 물은 맑다? 땡! 틀린 답이다. 템스 강은 낮엔 거무튀튀한 속살을 드러내 보이다가, 밤이 되면 네온사인 불빛에 반짝이는 풍만한 자태로 우리를 유혹한다.

오후 세 시가 되면 봇물이 터진 듯 밀려오고, 새벽엔 막 내린 영화관 빠져나가듯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디론가 내달린다. 밀물과 썰물이 심하다.


▲런던 템즈강.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템스 강변에 위치한 이 민박집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란다. 아마도 주인 총각이 매일 런던 투어 일정을 소상히 잘 알려 준다는 입소문 때문에 많이 오는가 보다.

또 같이 일하는 유학생 총각, 즉 조리 담당은 군대 시절 춘천 대룡산 꼭대기에서 취사반장을 했던 능력자다. 비빔밥이 끝내준다.

▲런던 민박집.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대한민국 자전거 집시가 드디어 대영 박물관에 진입했다. 다른 나라 문화재를 약탈해 전시해 놓고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고 비난받더니 이젠 무료입장이었다.

내셔널 갤러리에도 들렀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작품들이 수두룩했다. 우리도 남들처럼 팔짱을 끼고 작품에서 멀리 떨어져 비스듬히 감상하다가 가까이 다가가서 현미경 관찰을 했다.

누가 보면 저명한 고미술 수집가라도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작품들은 회화에 문외한인 우리가 봐도 참 신기해서 발길 돌리기가 아쉬웠다.


▲런던 대영박물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런던 대영박물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런던 대영박물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하러 매저스티극장에 왔다. 공연 시간은 2시간 반.
“로열석 주세요. 두 명이요.” “오! 미안해요. 이미 매진됐어요.” ‘그럼 스페셜로 끊을까? 아니야, 참아야지.’

우린 로열석 다음인 스톨석을 끊어 입장했다. 1인당 66파운드였다. 크리스티나와의 삼각관계, 애끓는 가창력과 웅장한 무대, 그리고 관현악, 화려한 조명, 자연스럽고 유연한 연출이 관객의 혼을 쏙 뺐다.


▲오페라의 유령.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런던은 온통 빨간색이다. 정신이 몽롱하다. 길거리 사람들이 저리도 우왕좌왕하는 이유는 아마도 색깔에 취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트라팔가 광장 옆 자전거 가게에서 대형 박스 두 개를 얻었다. 마침내 귀국길에 오른다.

▲런던 자전거 가게.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우리 집에 간다. 정말로 간다. 애들이 공항에 나온다고 했지?” 추니의 기분이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아쉽고, 시원하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민박집 봉고차에 자전거 싣고, 지친 몸 싣고, 희망 가득 싣고 히드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런던 시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런던 시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런던 시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런던 시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런던 시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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