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세력이 총력전을 펴고 있는 듯하다. 내년 대선 기준, 임기 1년 3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다. 국회로 상징되는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곳곳에서 '폭탄'이 터지고 있다. 게다가 장기전을 염두에 둔 동시다발적 국지전이다. 누군가 정치적 논란을 유도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새누리당은 언제라도 '진흙탕' 만들 준비를 마쳤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28일 단식은 계속하되, 국정감사에는 복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곧바로 의원총회에서 뒤집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29일 집권당 대표에 이어 원내대표까지 단식에 돌입했다.
근본적으로 따져보자. 이럴 필요가 있을까?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로 분쟁 요인이 해소됐다. 정치적 셈법으로 보면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이다. 국회의장의 정치 중립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은 많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물리적 보이콧은 여야 간 '협치'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뿐이다. 단순한 사안에 집권 여당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내걸고 "그쪽(정세균 의장)이 죽든지"라며 살기 섞인 적의를 내보일 필요는 없는 문제다.
왜 이럴까. 집권 여당의 29일 결정이 청와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런 의혹도 제기된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말하자면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의 본류, 본심도 잘 모르고서 성급하게 국감 복귀 결정을 했다가 서청원 전 대표의 말 한마디에 도로 국감 거부를 했다"며 "청와대의 대리인이라고 봤던 것인데, 지금은 청와대의 대리인 노릇도 잘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정현 대표의 단식에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권하지 않겠지만, 말리지도 않는다. 희한하다.
이정현 대표의 결단이 뒤집히면서 새누리당의 싸움은 장기 투쟁으로 가게 됐다. 새누리당이 국회에 복귀하더라도, 이미 정세균 의장을 '독재자'로 낙인 찍은 그들은 어떤 이유를 대든 국회를 뛰쳐나갈 것이다. 국회는 언제라도 진흙탕이 될 준비를 마쳤다.
경찰은 갈등의 기폭제를 자처한 것 같다
장외에서는 경찰의 물대포를 직사로 맞은 후 사망한 백남기 씨를 두고 경찰이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백 씨를 부검한다면서 두 차례 영장을 청구한 끝에 법원에서 발부된 영장을 받아쥐었다. 법조 전문가들은 법원이 영장 발부를 결정한 주요 근거를 백 씨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병사'라는 단어에서 찾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왜 '외인사'가 아닌 '병사'를 택했을까. 관련해 '윗선 개입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분명한 것은 백 씨를 둘러싼 논란이 영장 만료 시기인 오는 10월 25일까지, 약 한 달간 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경찰은 이 기간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시신 탈취'라는 무자비한 단어는, 군부 독재 시절 이후 약 30여 년만에 살아 있는 말이 됐다.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두 글자로 인해 경찰과 유가족은 지난한 투쟁을 벌이게 됐다. 정무적으로 풀 문제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이런 상황은 누가 바라고 있는 것일까? 현 경찰청장이 어떻게 검증을 통과해 야당의 반발에도 그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된다.
미르재단 논란 방치해도 된다…방해가 되는 인물은 제거한다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해 여권의 분위기는 "재단을 통해 누가 이권을 챙긴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논란은 있더라도 그러다가 말 것"이라는 식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역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 가족 기업 관련 의혹이나, 넥슨의 우 수석 처가 땅 매매 의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아마 청와대는 앞으로도 공식 반응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더 충격적인 의혹이 제기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상황에서 국정감사를 통해 미르재단 관련 의혹을 적극 제기해 왔던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공교롭다. 김 의원은 29일 국정감사에서 미르재단 사업에 한국농수산식품공사(aT)가 적극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공사 사장은 장관 부적격 판정을 받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국감을 앞둔 상황에서 벌어져 국회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사표 수리도 그렇다. 기관 증인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특별감찰관실 인사들마저 최근 무더기로 해직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특별감찰관실 국정감사는 공중에서 분해돼 사라졌다. 이 전 특별감찰관은 미르재단 의혹,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박근령 씨 의혹 등을 들여다본 인사다. 매우 대담한 처사다. 박 대통령 임기 초반에도 이런 노골적인 태도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이나 국회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했다.
아마도 '물대포 사망 사건' 추모 집회에 물대포가 등장할 것 같다
끝이 아니다. 정부가 불만 댕기면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 있을만한 일들은 부지기수다. 국방부는 오는 30일 새로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선정 논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경북 성주 지역, 그리고 김천 지역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던져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0월 1일에는 각각 '성과 해고제' 반대를 내건 공공 노조 파업 관련 대회, 백남기 씨 사망 추모 대회, 세월호 참사 900일 범국민 촛불문화제 등 집회가 예정돼 있다. 이날 대규모 집회에 백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물대포가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야당을 자극하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를 자극할 만한 일들이 마치 백화점식으로 벌어지고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 건국절 문제 등도 잠재적 기폭장치다.
갈등 조정자들은 약속한 듯 뒤로 숨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상 시국에 비방이 난무한다"고 야당을 향해, 의혹을 제기하는 시민들을 향해 일갈할 뿐이다. 국회, 거리,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갈등 요소가 폭발하는데, 이를 조정할 대통령,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들의 입에서는 민감한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나같이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들이다. 누군가 '금언 해제령'이라도 내린 것 같은 분위기다.
갈등을 방치하고, 나아가 부추기는 듯한 모습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 모든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거리의 시민들에 대한 혐오, 정치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서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야당은 이런 상황에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에너지의 소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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