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4시 경북 경주시 황성동 황성공원.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텐트들이 70동 가량 늘어섰다. 저녁 시간에 가까워지자 밖에서 일상 생활을 보내던 이들이 하나 둘 텐트촌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5.8 규모의 지진을 포함해 3번의 강한 지진과 4백여 차례의 여진으로 불안한 경주지역 주민들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황성공원에 임시거처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모습이다. 당초에는 '월성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준)' 회원들 일부만 지난 21일부터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했지만 지금은 일반 시민들까지 텐트를 치고 공원에서 지진에 대비하고 있다.
첫날인 21일에는 텐트가 8동이었지만 22일에는 15동, 23일에는 26동, 24일에는 61동으로 늘었다. 닷새째인 지금은 70여동의 텐트에 100여명으로 확산됐다. 대지진 예측이 나오면서 텐트촌으로 몰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간단한 비상식량과 침낭, 겉옷, 세면도구, 손전등, 상비약 등을 구비하고 텐트에서 숙박하며 출퇴근을 한다. 필요한 물건들이 있을 때만 집으로 오가고 있다.
가족 단위를 포함해 부부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나홀로 텐트를 친 주민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원래 자연공원법상 지정 장소가 아닌 곳에서는 텐트를 치고 야영생활을 할 수 없지만, 정부가 지난 22일부터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지자체도 주민들의 텐트 피난촌을 막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황성공원 타임캡슐공원 주변에서 시작된 텐트 피난촌은 자리가 부족해 길 건너 공원으로까지 늘어났다. 피난촌 소나무에 걸린 보드판에 텐트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일부 주민은 텐트에 '전기 남아돈다. 월성원전 폐쇄'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또 '경주 지진 나도 할말 있어요'라는 대형걸개가 생겨 주민들이 각자의 희망 사항을 적기도 했다.
'너무 무서워요', '각자 도생하라는 건가', '집안에 있는 게 더 두려워요', '노숙자가 따로없네', '지진도 무섭지만 핵발전소가 더 무서워요', '원전 멈추어라. 시민 다 죽는다', '하루하루 잠도 못자고 공부도 못하고', '원전 폐쇄해주세요', '아파트 내진설계 의무화', '원전폐쇄. 다 죽으라는거야', '원전 무서워요. 안전하다고 하는데 못 믿겠어요', '경주에 사는 게 너무 불안해요',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 경주시도 대한민국도 그날 없었다', '원전 다 깔린 경주서 지진나면 어떻게 사냐', '언제 지진 멈추나'
지진 발생과 관련해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한 대응을 비판하는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또 진앙지인 경주에 6기의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있어 원전을 향한 불신도 상당했다. 특히 12·19일 모두 월요일 저녁에 강진이 발생해 주민들은 오는 26일 월요일 저녁에도 지진이 올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김혜민(38.가명)씨는 7살, 5살 두 딸과 함께 처음으로 공원에 텐트를 쳤다. "아파트 사는데 너무 무섭다. 요즘에는 저녁만 되면 얘들 옷을 다 입히고 도망갈 준비부터한다"며 "2주 동안 일상생활이 무너졌다. 그런데 경주시도 정부도 지진에 대비한 어떤 교육도 시키지 않고 있다. 내일 밤이 너무 무섭다. 차라리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덜 불안한 지경이다. 어떻게 살라는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장우영(45.가명)씨와 임순내(42.가명)씨 부부는 이틀 째 텐트를 치고 공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장씨는 "경주시가 과연 지진에 대비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며 "주민들이 밖에서 텐트 생활을 해도 내다보는 사람 한 명이 없다. 얼마나 불신이 크고 무서웠으면 여기서 생활하겠냐"고 지적했다.
특히 25일 오후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김영호 국회의원과 정현주 경주시의원은 26일 행정자치부, 27일 국민안전처 국정감사를 앞두고, 지진과 관련해 주민들의 민원 상황을 듣기 위해 텐트촌을 찾았다.
한편,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 4백여명은 오는 26일 오전 8시부터 월성원전 앞에서 지진대책 마련과 고준위방폐장 설치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항의집회와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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